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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담임 엄마의 마지막 연애편지

담임 엄마의 말랑말랑 연애편지 19

담임 엄마의 마지막 연애편지

 

 

 

큭. 이 만화 완전 좋제, 완전 좋제! “나 이렇게 옹졸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 이렇게 내 속마음을 훅 열어 놓고 외칠 수 있다는 거. 기분 좋지 않나? 그러고 보면 결국 인간의 생각이란 다들 어느 정도는 소심하고, 또 어느 정도는 너나할 것 없이 옹졸하거든. 그 사실이 주는 위로, 위안.

11반에겐 편지를 쓰는 게 참 어렵다. 거칠게 길들여진(?) 아이들이라 그런지, 우리 사이엔 왠지 간질간질 말랑말랑 연애편지를 쓰는 게 뭐랄까. 오글오글 부끄럽다. 큭. 그래도 써야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쓰다 만 편지, 지난주 내내 쓰다 만 편지. 결국 또 처음부터 다시 쓰는 2월의 연애편지. 시작!

 

담임 엄마의 결혼 이야기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할까? 너희들이 좋아하는 결혼식 이야기부터 해 볼까. 준비하는 내내 나는 참 재미있었어. 반지나 드레스는 30분 만에 고르면서 집에서 키울 꽃 한 송이, 나무 하나 고르는 데는 몇 주가 걸렸던 여자. 방석 하나를 만들기 위해 천을 떼고 재단하고 바느질을 맡기고 찾으러 가는 무던한 수고를 불사하는 여자. 역시 난 학교 그만두면 재봉틀 가게를 차려야 해.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쪼그라들면 용감하게 학교를 그만두고 멋진 재봉틀 할머니가 될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소식을 전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던 고마운 사람들의 목소리. 멀리서 부산까지 날아와 준 오랜 친구들,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 나를 키워 주신 목사님, 며칠 밤을 고생해서 교회를 꾸며 준 언니 오빠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의 소박하고 정성스런 작은 선물들. 그리고 사랑하는 11반. 나의 꼬맹이 아가씨들. 당신들의 완벽한 노랫소리.

축가를 들으면서 참 행복하고, 음, 너희들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객들은 그것이 너희들의 평소 모습이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거! 선생님은 마흔 명, 반 전체가 하나로 마음을 모아서 같은 동작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제일 감동적이었어. 우려했던 ‘난동’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나의 교회 생활을 배려한 너희들의 넓은 아량으로 기억하마.

너희들 덕분에 나는 참 행복한 기억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당신들 얼굴이 하나하나 고스란히 담긴 예쁜 영상. 단정한 교복을 입고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부르던 노래. 너희들의 고운 목소리,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생긋생긋하던 표정, “아 떨려, 떨려” 하던 속삭임. 색색의 편지. 마음이 짠해지던 너희들의 글들. 그대들의 명랑한 발소리를 닮은 초록색 운동화. 이 모든 것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올해 참 힘들고 가쁘게 걸어온 걸음이었지만, 처음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교사에게는 아이들이 가장 큰 선물이고, 보람이고, 꿈이라는 생각.

 

아내? 담임?

아직은 실감이 잘 안나. 매일 밤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프고, 밤마다 대학 MT 가는 기분으로 퇴근을 하면 청소하다 지쳐 잠들어 있는 신랑이 있는 것이 신기하고. 할 줄 아는 집안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아 ! 인생 헛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고등학교 담임’과 ‘아내’는 결코 병치시켜서는 아니 될 단어란 생각도 하지. 내게 펼쳐진 새로운 삶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기쁨을 선택할 생각이야.

오늘 아침 선생님이 읽었던 칼럼 이야기해 줄까? 어떤 아줌마가 9년 만에 새 아파트 전세를 얻었데. 10평짜리 반지하의 신혼 시절, 높은 아파트들을 올려다보며 나는 언제 저기 한번 살아 보나 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새집에 가 보니 지독한 새집 증후군 때문에 천식을 앓던 아이가 너무너무 힘들어하는 거야. 이 아줌마는 새삼 ‘전세’의 설움을 느끼며 ‘나도 내 집을 갖고 싶다’고 외치지. 이때, 옆집 아줌마 말씀. 요즘 집값이 너무 들쑥날쑥해서 차라리 맘 편한 전세가 최고라고, 자기는 자기 집값이 갑자기 오를까 봐 이사도 못 간다며, “나는 님이 부럽소” 했다는.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선생님은 살면 살 수록 이 말이 ‘진리’ 인 것 같다. 새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새집 증후군에 멈칫하는 것. 또 누군가는 집을 갖고 살면서도 집값 때문에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야. 얻은 것, 누릴 수 있는 것보다 잃은 것, 누릴 수 없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불평을 하게 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내가 여러 번 되뇌었던 말은 ‘비교하지 말자’였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예물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내가 불행하게 느껴질 것 같았거든. 내게 온 좋은 사람, 내가 가진 좋은 추억, 우리가 꿈꾸는 삶의 방향, 소박하고 따뜻한 우리 집…. 이런 기쁨을 불필요한 불평들로 어지럽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사랑하는 11반, 기쁨과 슬픔은 선택하는 거야. 나는 우리가 늘 기쁨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야

축제를 준비하는 너희들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 진행, 정리(는 쫌 제대로 안 됐지만). 모든 과정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의견을 모으고 역할을 나누어 움직이는 18세 아가씨들. 중학교 축제만을 겪어 본 내게 당신들의 ‘혼자서도 잘해요’는 진심 감동적이었음. 아, 좋아 ! 우리 반의 이 놀라운 자치 능력.

하지만 요즘 선생님이 좀 힘든 건 너희들이 집중하지 않을 때. 전달해야 될 말이 있으나 그대들이 듣지 않을 때, 그리고 여러 번 했던 잔소리를 또 해야 할 때. ‘아, 정말 내가 말 안 들을 때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셨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때때로 화가 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11반. 선생님이 딸을 낳는다면 진심으로 나는 똑똑한 딸보다는 바르고 착한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부모님들이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조금쯤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한다. 알제? 선생님 성격. 아니다, 선생님 마음. ^___^

11반! 힘들지만 우리 조금쯤은 정직함을, 배려를, 이해를 배우자. 선생님도 11반도 같이 배워 가자. 조금씩 더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 가자꾸나.

매 순간, 우리 간절히 살자. 하루하루를 간절히 살아서 우리가 심겨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자. 우리 헤어지는 날까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11반, 힘내. 당신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야.

마지막으로 쓰는 연애편지

오래오래 묵혀 둔 따뜻한 온기 가득 담아.

여진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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