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단 일기

이쁜 누나 사랑해요

작은 학교, 큰 이야기 #7

이쁜 누나 사랑해요

 

  수안이 경찰서 간 날

지우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반 수안이가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미 지우개가 많아 더 사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피아노 학원에 다녀온 후 어느 새 새로운 지우개가 필통 속에 있는 것을 수안이의 이모인 분교장님께서 발견하신 것이다.

“이 지우개 어디서 났어?”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하던 수안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학원 앞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웠어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안이의 변명이었지만, 그 시절을 이미 겪어 온 어른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몇 번의 추궁에도 수안이가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자, 결국 수안이의 어머니와 분교장님께서 수안이를 데리고 집 근처 파출소에 찾아갔다.

“경찰 아저씨, 안녕하세요. 우리 집 아이가 지우개를 주웠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요. 이 일을 어쩌면 좋지요?”

이런 일을 처음 겪으셨을 경찰 아저씨는 처음에 당황하시는 것 같았으나, 능청스런 분교장님의 연기를 간파하시고 나서는 다행히 맞장구를 쳐 주셨다.

“정말인가요? 피아노 학원 앞에서 이 지우개 못 본 것 같은데…. 한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얘야, 잘못하면 경찰서에 잡혀서 집에 못 갈 수도 있어.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단다.”

그때서야 잔뜩 긴장했던 수안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사실을 고백하고야 만다.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쁜 누나 마니아

“선생님, 선생님을 방금 형아라고 부를 뻔 했어요.”

“김연아 누나 에어컨 틀어 주세요.”

“선생님, 그저께 우리 집 검은 개가 쑥스러워서 죽었어요.”

다윗은 가끔 수업 시간에 엉뚱한 말들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때가 많이 있다. 며칠 전 슬기로운 생활 수업시간의 일이다. 학생들과 함께 낮에 일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과 밤에 일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의 삽화 그림을 나누어 여러 장 보고 있었다. 여러 그림 중에 젊은 여자 분의 그림이 나올 때마다 다윗은 목청껏 소리 지른다.

“이쁜 누나다!”

그렇다. 다윗은 우리 반 채연이 다음으로 불특정 다수의 이쁜 누나를 열렬히 사모하는 ‘이쁜 누나 마니아(?)’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우리 학교에 봉사 활동을 왔던 예쁜 여대생들을 보고 정신을 못 차렸던 다윗이가 이제는 교과서의 예쁜 누나 그림만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사진들을 다 보여 주고 나니 다윗은 만족한 듯 웃으며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이쁜 누나 사랑해요!”

그리고 나서는 교과서에 등장한 이쁜 누나에게도 고개를 숙여 ‘쪽’ 하고 입을 맞춘다. 다른 아이들은 다윗이의 이런 남자답고 솔직한 모습에 넋을 잃고 깔깔대며 웃기에 바쁘다.

나도 이만큼 어렸을 때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예쁜 누나들을 좋아했었기에 다윗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얼굴 예쁜 누나만 지나치게 편애하는 다윗이가 마음씨가 예쁜 누나들도 조금만 더 사랑했으면 생각하고 나 혼자 웃음을 지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줄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모든 사람들을 조건 없이 똑같이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아이들 모두는 선생님으로부터 조건 없는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수업 시간에 활동에 잘 참여하고 성실하게 지내는 학생들이나 교사의 말을 잘 따르는 아이들만 더 많이 아껴 주고 사랑해 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마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잘나고 예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와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의 목숨을 바쳐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사랑을 주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사람도 없다”는 말처럼 나의 주위에는, 그리고 우리 교실에는 누군가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 누구보다 부족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처럼, 나도 아이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야지 기도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교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오아시스  (0) 2012.01.11
시끌벅적 현장 학습 가던 날  (0) 2012.01.11
인간은 재밌어  (0) 2011.11.07
말, 말, 말!  (0) 2011.11.07
에티오피아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  (0) 201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