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단 일기

내 삶의 오아시스

담임 엄마의 말랑말랑 연애편지 18

내 삶의 오아시스


삶이 너무 무겁다 느껴질 때가 있어

월간 《좋은교사》에 보낼 원고를 정리하면서 작년 이맘때 12반 아이들에게 썼던 연애편지를 꺼내 다시 읽어 보았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 그때 그 느낌, 설렘, 서운함, 고마움, 다짐. 그런 것들로 문득 가슴이 짠하네. 그리고 이 글을 발견했다. 예전 편지에 실어 주었던 인디고 서원 아람 샘 글이 올해의 나에게는 겸허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참 두근거렸는데. 정말 멋있어서, 하나하나 팍팍 마음에 와 닿아서, 정말 아름답고 가치 있어서 ‘쿵쿵’ 소리가 들릴 만큼 가슴이 뛰었는데…. 오늘 나는 다시 이 글을 읽으며, 뭐랄까 참회를 하고 있다. 얘들아.

지금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머뭇거림은 ‘쉬고 싶다’, ‘조금 더 편하게, 적당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치열하게 정직하게 몸부림치는 것에 지쳐 내 중심을 잃고 매일매일의 순간만을 버티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희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 나는 항상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조금은 마음이 순해지고 착해진다. 그래서 편지를 자주 써야 한다. ㅡㅡ;;

 

내게는 너희들이 위로고 힘이었어

오늘은 즐거운 연휴의 하루 앞날. 냐하하. 행복하다. 명절 손님을 치르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준비하시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늘 ‘솔로’ 시절의 명절을 마음껏 누리리라 다짐하였었지.

그런 생각해 본 적 있나? 왜 ‘시집’ 이란 목적어는 ‘보내다’란 서술어와 호응하고 ‘며느리’란 주어는 ‘들어온다’라는 서술어와 호응하는 걸까? 늘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때면 엄마를 보면서 하는 생각.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너희들은 좀 더 인격적이고 평등한 가족 문화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나라는 것과, 무엇보다 이번 명절 때 어머니가 힘드시지 않도록, 혹은 힘든 마음이 잘 위로받으실 수 있도록 마음을 써 드리라는 것. 그런 잔소리.

할머니를 하늘까지 배웅해 드리고 돌아오는 길. 사랑하는 11반. 선생님은 참 고마웠다. 너희들의 문자 하나, 너희들의 사진 하나, 전화로 불러 주는 노래 한 소절이, 그 속에 담긴 너희들의 살가운 마음이 내게 참 큰 위로가 되었다. 너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선생님은 참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했단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비로소 너희들이 참 내 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아니, 너희들의 마음이 내게 진심으로 와 닿았다고 할까. 그랬다. 11반. 내가 혼자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 마음이 들어서 그게 참 좋았다.

 

별난 너희들이라서 더 좋아

선생님들께서 지나가는 말로 “11반 아이들이 좀 별나죠?” 하실 때가 있다. 처음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반 수업이 힘드시다는 말씀처럼 들려서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했는데, 이젠 약간의 초월감이랄까? ㅋㅋ 도를 닦아서 그런지, 정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 애들이 좀 별나죠? 그래도 저는 나름 재미있어요” 하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주일 저녁이면 항상 남자친구랑 ‘이번 주 있었던 일 중 가장 감사했던 일이랑 가장 힘들었던 일’ 나누기를 하는데 선생님은 늘 너희들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내게 와서 진학 상담을 하는 것도 좋고, 대학 어디가면 될까 고민하는 것도 예쁘고, 점심시간 급식 지도하다 만나면 ‘똥땡님~’이라면서 달려오는 것도 좋고, 성적을 올려 보겠노라 새 다짐을 하는 것도 애틋하다. 그냥 다 이쁘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1번 혜진이부터 38번 혜련이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나는 니들이 다 참 좋다.

나는 내가 아이들의 나쁜 점, 미운 점보다는 좋은 점, 잘하는 점, 예쁜 점, 기특한 점이 잘 보이는 사람이라서 좋다. 왜냐하면 그래서 진심으로 니들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좀 더 진실하게 ‘열심히 해 보자’라고 다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이걸 참 잘하는데, 이런 점이 참 좋은데’ 싶으니까 그걸 버려두는 것이 안타깝고, 더 다독이고 싶고, 약속한대로 잘 하지 않으면 속상하고 그렇다. 덕분에 니들은 참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11반이 힘들었던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들, 나와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한 교실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 본 경험, 맞추어 가며 살아 본 연습들이 훗날, 너희들의 둥근 성격, 깊은 이해심을 키우는 것에는 좋은 자산이 될 것이라 위로하여 본다.

 

방학 잘 보내렴

사랑하는 11반.

너희들은 지난 한 학기를 돌아보니 어떤 게 제일 기특하고, 어떤 게 제일 후회되니? 선생님은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 거 반성하고 있는 중. 소중한 자투리 시간에 지뢰 찾기를 하거나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 거. 그래서 더 중요한 기도나, 운동을 빼먹고 그냥 지쳐 잠들곤 했던 것. 새 계절엔 마음을 좀 더 튼튼히 먹어야겠어.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켜지 않는 것. 학교에서도 짧은 시간을 집중해서 사용하는 것. 집에 와서는 기도와 운동을 하는 것. 기타 등등. 딸내미들도 스스로 한 학기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들을 위해 주먹을 불끈 쥐는 시간을 갖길.

선생님은 너희들이 지금 다짐하고 생각한 것들을 방학 내내 잘 기억하고 잘 지켜낼 수 있도록 새벽마다 기도할게. 아, 이제 자야지. 방학 잘 보내고. 얘들아, 사고치지 말아줘. 사랑하는 11반, 세상에서 제일 예쁜 11반, 제발 !

겨울.

예지와 다예의 힘 공격에는 속수무책

그래도 사랑하는 힘은

날마다 강해지고 싶은 여진 Mom

 

'교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아, 얼른얼른 쑥쑥 커야 해  (0) 2012.01.11
겨울, 학교 그리고 두 마음  (0) 2012.01.11
시끌벅적 현장 학습 가던 날  (0) 2012.01.11
이쁜 누나 사랑해요  (0) 2011.11.07
인간은 재밌어  (0) 201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