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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겨울, 학교 그리고 두 마음


아줌마 쌤의 계속되는 교사도전기 21

겨울, 학교 그리고 두 마음

 

 

 

교사의 마음

고등학교를 시험 없이 진학하는 인천. 11월 중순이 되면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른다. 이때까지의 점수(교과, 출석, 행동 발달, 특별 활동, 봉사 활동을 모두 숫자화)를 모두 모아 석차를 매기면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계고 갈 녀석들이 대략 정해진다. 때문에 기말이 끝나면 마음껏 누리리라의 무한 자유가 허용된다. 물론 이것은 그 녀석들의 우격다짐이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이젠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해야 하니까 마지막 3개월은 미친 듯 놀고 멋진 추억도 만들리라는 야심찬 계획이 무한 자유의 이유다.

그러나 알 교사는 다 안다. 이 녀석들의 고등학교 진학 후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실 기말고사 전부터 분위기는 아수라장으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 시험이라고 겨우 버티던 예의가 마지막 시험 시간(주로 예체능 교과가 차지)은 기둥 세우기나 계단 만들기로 찍신 강림을 바라며 시계의 초침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자는 녀석도 없다. 이미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시간을 잠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종소리는 해방의 소리. 종이 울리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고함들. 그에 반해 어설픈 웃음으로 때우며 교무실에 들어서는 교사들의 표정은 무력감과 걱정으로 한숨부터 나온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내야 하나. 그저 관리자와 녀석들 사이에서 적절히 중심을 잡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지만. 동 교과 선생님들이 모여 머리를 짜내도 매년 제자리인 느낌. 눈을 반만 뜨고 남은 시간을 버티느냐. 두 눈 부릅뜨고 끝까지 정신 차리라고 긴장감을 팽팽하게 당길 것인가. 올해 나의 선택은 후자.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예측 불허. 다른 선생님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방학을 맞이해 이 글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다.

 

엄마의 마음

이때쯤 되면 아침도 무섭다. 길어진 밤으로 7시도 깜깜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집을 나서는 큰아이. 학교까지 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나야 지각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서지만 좀처럼 그 시간을 당기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올해 들어 처음 영하 3도를 기록한 아침. 월요일이라 차는 더 느렸는지 교문에 8시 3분에야 도착. 친구 두 명과 함께 학생 부장 선생님에게 딱 걸린다. 이미 운동장을 뛰고 있는 아이들.

그런데 어인 일인지 면벽을 시킨다. 피우지 말아야 할 것을 피우는 녀석들에게 준다는 그 벌.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각을 했으니 그늘진 운동장 쪽으로 가 벽을 본다. 서서히 치마 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 다리는 이미 남의 다리가 되고, 게다가 생리통까지 심해진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추위로 고통은 심해지는데 수업 시작종이 쳐도 들여보낼 기미가 없다. 잊어버리셨나? 도망가야겠다 마음먹는 그 순간 건물 안에서 몸을 녹이시던 학생 부장 선생님이 다시 나타나신다.

말도 못하고 눈물만 범벅이다. 눈물로 얼굴도 얼고 서러움으로 마음도 언다. 그렇게 이어진 1시간 30분가량의 벌. 그 과정을 듣는 내내 억울한 학부모의 심정이 되어 가는데 아이는 다행히도 집으로 도망오지 않은 걸 대견해 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꾹 참은 이유는 미술반 인턴 선생님의 따뜻한 한마디.

“너희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 소리에 터진 통곡.

“선생님이 왜 그러셨을까? 따뜻한 차 마시고 몸 좀 녹여.”

마음 놓고 운 통곡 때문인지 따뜻한 차 때문인지 마음이 조금 나아졌던 것.

그런 와중에 몇 선생님들이 들려주신 이야기. 면벽을 하는 아이들 중에 떡볶이 코트를 입고 온 아이를 발견. 모두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들 예쁘다고 칭찬했다는 것이다. NF가 아닌 옷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에겐 예뻐 보였으리라. 그런데 이 말에 우그러졌던 큰아이의 얼굴이 활짝 펴졌던 것. 그리곤 내게 한다는 말.

“엄마, 난 벌 받는 것도 예뻐. 울어도 예뻐. 얻어 입은 떡볶이 단추 코트도 내가 입으면 예뻐.”

참, 같이 웃어야 하는 건지. 어쨌든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썼던 부모의 심정을 결국 지워 버렸다. 물론 내 딸이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아니다. 그 뒷감당을 하기에 얼마나 시달려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마음에서 한마음으로

교사와 엄마로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녀석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볼 수 있고, 집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를 교사의 마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아 힘겹고 상처받는 일이 많다. 두 마음을 다 겪는 나도 이러니 한 쪽을 살아가는 분들은 더하리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하는 ‘6기 등대지기 학교’를 수강했다. 그 안에서 서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 마음들을 만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마음들이 결국은 하나의 본질과 가치를 찾아가는 것을 보았다. 교사든 학부모든 결국은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소망하는 어른의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땅에서 사시며 먹이시고 가르치시고 사랑하셨던 그분도 인간과 신의 두 모습이셨지만 사랑이라는 본질과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실천하셨다. 한겨울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 교육의 갈라진 모습들과 마음들에서 하나의 본질과 가치를 찾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교사는 강한 벌을 고민하는 대신 남은 한 달을 아까워하며 아이들과 배움을 창조해 내는 데 집중할 것이고, 부모는 교사와 소통하며 교육 활동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아이들이 무한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찍신 강림을 바라기보다 이미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책임감 있게 살아내는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 동안 수련회든 연수든 그 소망을 꼭 발견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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