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농부 철학자 윤구병 ] 아이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교육은 미래가 없습니다.

* 이 글은 월간 좋은교사 4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보리 출판사 블로그 <보리 둘레 이야기>에서 다시 베껴왔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김진우  |  사진 조은하

윤구병 씨의 이름의 내력을 들은 사람은 대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아홉 형제의 마지막으로 구병이 되었다고 하니 일병부터 시작되는 형제들의 이름을 꼽아 보다가 여덟째에 이르러서는 좀 심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그래도 구병이 제일 낫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런데 남들에게는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가족사는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일찍이 천재 소리를 들었던 형들은 지식인으로 해방 정국과 6.25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거치면서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젊은 나이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이에 아버지는 남은 삼형제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간다. 거기서 어린 구병은 4학년 나이가 될 때까지 학교에도 가지 않고 산과 들과 바다를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는 이 시절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학교 교육 속에서 자연인 윤구병은 많은 방황을 하다가 대학에서 일생의 스승 박홍규 교수를 만나면서 철학에 눈을 뜬다. 이후 충북대 철학 교수로 지내면서 그는 내면에 끊임없는 갈증을 품고 있다가 마침내 1996년, 정년을 15년이나 앞두고 교수직을 내려놓고 나와서 변산으로 들어가 진짜 농부의 삶을 살게 된다. 

그는 특별히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3권의 책 가운데 하나가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다. 그는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고문이라고 일갈하면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10년 2월 24일 서울 서교동의 ‘문턱 없는 밥집’을 찾았다. 인터뷰는 ‘문턱 없는 밥집’ 옆의 ‘기분 좋은 가게’ 에서 이루어졌고, 좋은교사 아카데미 회원들도 동석했다.

더보기

문턱 없는 밥집
변산 공동체의 유기농 작물을 재료로 만드는 식사를 제공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유기농을 먹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점심 밥값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저녁은 제값을 받고 팔고 수익은 점심을 통해 나눈다. 특이한 점은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춧가루 하나라도 그릇에 남아 있으면 불합격이다. 필자는 처음에 남들이 먹고 쌓아 놓은 밥그릇을 새 그릇으로 알고 가져갈 뻔했다.

▷ 문턱없는 밥집 지도 보기

기분 좋은 가게
친환경 제품이나 기증받은 물품을 재활용하여 판매한다.

▷ 기분 좋은 가게 지도 보기

변산으로 들어가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자연에서 농사짓는 것에 대해 대개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불행했어요. 학생 때도 주리를 틀다가 가출도 하고 했지만 대학 선생을 하면서도 불행했어요. 아이들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절실한 질문들이 저마다 있습니다. 그런데 강의실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못해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 “사담(私談) 그만 두고 진도 나갑시다” 하는 애들이 꼭 있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아이들더러 질문하라 보면 하나마나한 질문을 해요. 소크라테스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가 하는 그런 질문은 나한테 할 필요가 없잖아요? 사담이 절실한 거거든요. 그와 같은 절실한 질문이 없어지고, 질문 없는 대답과 대답 없는 질문이 평행선을 긋게 되니 행복하겠어요? 그래서 불행해서 대학 교수 그만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자랐으니까 그만두고 돌아가자 해서 사표를 냈지요. 마지막 1년을 서울대에서 교환 교수를 하면서 변산에서 농사를 했는데 대학 선생과 농사를 겸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1996년 1월에 사표를 내고 10년 동안 아무 데도 안 가고 농사일만 꼬박 했습니다. 경제성만 따지게 되면 손해죠. 콩이 틔어서 떨어진 것을 하루 종일 주우면 천 원어치쯤 될 겁니다. 그 시간에 글을 쓰면 수십만 원을 받을 수도 있죠. 그런데 콩을 주울 때는 마음이 편한데, 대낮에 집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못하겠어요. 그래서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맞아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어야 해요. 이렇게 15년을 살았는데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제 생에서 이 15년이 가장 행복했어요.

어린 시절은 어떠했습니까?

저는 얼굴만 봐도 촌놈이죠. 제가 형제가 아홉인데, 위로 형 여섯이 전쟁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똑똑한 형들이었다고 들었어요. 당시는 해방되고 나서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70%를 넘었다고 해요. 형들도 그 영향을 받았는데 전란을 통해서 희생되고, 아버지는 남은 형제를 시골로 데리고 들어갔지요. 제가 4학년 나이가 되도록 학교를 못 다녔어요. 사촌형이 한글이라도 깨우쳐야 한다고 권해서 학교를 다녔는데, 저는 학교에 늦게 간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놀 수 있었고, 제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체가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육 특히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보면 갓 나서 걸음마를 하고 입만 떼면 조기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조기 교육은 말하는 것, 걷는 것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그 외의 조기 교육은 전부 해로울 뿐입니다. 옛날이야기를 해도 할머니 같으면 “이웃 마을에 혹부리 영감이 살았는데…”라고 할 것을, 욕심 사나운 부모들은 ‘옛날에 함경도 함흥에 혹부리 영감이 살았는데, 함흥으로 말하자면 조선 시대에 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한 곳으로, 함흥차사는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온갖 것을 다 가르치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걸 아이가 어떻게 다 알아듣습니까? 아이가 어릴 때는 춤추고 뛰어놀아야 하는데 그러한 조기 교육은 교육이 아니고 학대입니다. 손발을 못 놀리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아닌 교육을 시키고 있고, 계속해서 아이들을 부모나 사회의 통제 속에 몰아넣어 놓고는 말로만 자율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니 되겠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늦게 간 것이 저를 지켜 주었다 생각합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서 서울대를 갔느냐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부는 꼭 해야겠다는 동기가 주어지면 진짜 공부가 됩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가출을 하고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가도 마치 오늘 학교 다녀온 것처럼 맞아 주었습니다. 야단을 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집에 처박혀 있으니까 하루는 사진관에 가자고 하시더라구요. 사진을 찍고 나서 아버지께서 사진에 한문으로 네 글자를 쓰셨는데, 나중에 뜻을 찾아보니 ‘마지막 남은 실낱 한 오라기’라는 뜻이에요. 그 뜻을 알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구요. 그 때부터 아버지를 위해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공부할 때는 평소보다 더 충분히 잠을 자고 놀아야 됩니다. 평소 8시간을 자는데, 공부에 집중을 하니까 더 자야 되더라구요. 1년 동안 전력해서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갔어요. 어떤 동기만 뚜렷하게 주어지고, 공부하는 법만 제대로 익히면 됩니다. 변산 공동체 아이들도 1년만 공부하면 대학에 들어갑니다. 평소에는 하루에 3시간 정도 밖에 안 가르칩니다. 나머지는 목공, 들살림, 갯살림 하는 거예요. 반은 노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서 자연 생태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스스로 공부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요.

변산에는 도서관을 잘 갖춰 놓았습니다. 자기네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도록 합니다. 도서관은 시작종과 끝종이 없잖아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읽다가 아니면 제쳐 두고 재미가 있으면 10시간이고 20시간을 파고들 수 있죠. 싫증이 나지 않으니까요.

자연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저도 농사를 15년을 했지만 아직 풋내기입니다. 자연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굉장히 매섭습니다. 저희가 씨를 약 100종류를 뿌리는데, 처음에는 ‘일찍 뿌려 놓고 쉬지’ 하고 생각하는데, 싹이 절대 안 돋습니다. 자연은 대개 노인을 통해서 소리를 들려주지요. 자연이 “너 씨 뿌릴래? 굶어 죽을래?” 하고 말하는 거예요. 잡초도 제때 매지 않으면 작물이 죽습니다. 보리를 제때 안 베면 비를 맞고 썩어 버립니다. “제때 거둘래, 죽을래?” 하는 거지요. 자연은 예쁘니까 살려 주고 미우니까 죽이고 하는 게 없어요. 추상(秋霜)이라는 말이 있죠. 가을 서리가 내리면 한꺼번에 다 죽어 버립니다. 자연은 추상 같은 데가 있어요. 살려면 복종해야 돼요. 

그런데 부모의 통제는 엉터리로 해도 복종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 통제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 봐야 돼요. 과연 이런 식으로 손발을 쓰지 않고 머리만 쓰도록 책상머리에 붙들어 둔다고 할 때 이 아이들이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할까요? 지금 세계가 다 똑같습니다. 이제 곧 다른 데서 갖다 먹는 시대가 지나갑니다. 제가 만약 교육 정책을 세우는 입장에 있다고 한다면, 방학이나 휴일에 아이들을 전부 자연 속으로 쫓아 버리겠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신나겠어요? 한 달 동안 뛰어놀라고 하는 거죠. 시골에 가서 일손도 돕고 하는 거지요. 아이들이 놀아야 나라가 삽니다. 손발을 묶어 놓으면 나라가 죽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그 길로 들어섰고, 우리나라가 그 맨 앞에 있습니다.

지금 전부가 물질 에너지를 쓰고 살고 있는데, 조금 불편해도 생체 에너지를 사용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지금 좀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물질 에너지에 의존하던 사람들에게 만약 전기가 끊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층 아파트에 있는 사람들부터 살 길이 없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죠? 시골로 가서 밥 좀 주세요 하겠지요. 만약 안 주면 폭력을 쓰겠지요. 그리고 종자를 다 먹어 치울 것입니다. 결국 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변산 공동체 같은 곳이 빨리 많이 생겨서 도시민과 연대할 길을 열어야 하는데 지금 거의 없습니다. 저는 내심 걱정이 많습니다. 저는 지금 죽어도 자연사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 미래를 살아야 하는데, 이 세대에 다 더럽히고 다 써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상태로는 절망입니다.

변산 공동체 학교에서는 인문학은 어떻게 가르칩니까?

하나만 말씀을 드리면 우리 식구 가운데 가을이 엄마라고 있습니다. 고려대 사학과를 나온 사람인데 변산에 온 지 12년이 넘었는데요. <개똥이네 놀이터>에 이야기가 연재되는데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게으른 여편네’라서 다른 사람에게 아주 평화를 줍니다. 가을이 엄마가 역사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곡식의 역사를 가르쳐요. 옥수수는 어디서 기르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가르치고 다른 의식주와 관련된 것도 가르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것은 대학 입시에 안 나온다 말입니다. 학부모들은 왜 그런 전문적인 것을 가르치느냐고, 그런 것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역사 시간에 무엇을 배웁니까? 왕조의 역사를 배웁니다. 심지어 외국 왕조까지 배워요. 그거 나중에 아무 기억도 안 납니다. 우리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전문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 의식주와 관련된 것을 먼저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기와 연관이 된 것은 본능적으로 잘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의 경우 성장하면서 회의하거나 갈등하면서 농촌을 떠나고 싶어 하지는 않나요? 부모들은 자신의 결단으로 농촌으로 왔지만, 자녀들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거의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자란 경우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정도 되어서 들어오는 경우는 도시 생활에 젖어 있기 때문에 시골에 사는 것에 대해 불행을 느끼기도 합니다. 반대로 중학생 나이인데 스스로 각성을 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아이는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농사는 지금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며 들어와서 농사를 배운 아이도 있어요. 공동체에 같이 살지 않으면서 인근에서 학교 안 다니고 오는 아이도 있어요. 우리는 학비를 안 받습니다. 생활비도 없어요. 대신 용돈을 법니다. 벽돌 한 장에 얼마다 하는 식으로 해서 용돈도 벌고 웬만하면 자기들이 직접 집도 짓고 삽니다.

책에 보면 공동체는 ‘어른들에게는 지옥이고 아이들에게는 천국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어른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도시에서는 성격이 안 맞아도 낮에만 보고 밤에는 격리되니까 견딜 만한 데 비해 여기서는 24시간 같이 지내야 하니까 힘들지요. 겨울이 되면 더 싸웁니다. 이야기하다가 상호 비판이 심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저마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종교적 신념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학력도 다른 사람들이 또 고집은 대단하단 말이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남한테 간섭받기 싫어서 온 사람들이거든요. 부딪치면 심하게 부딪치죠. 어른들에게는 지옥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온 사람들에게 3년은 같이 살자 하고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은 독립을 시킵니다. 밥상머리 같이하는 것이 간섭이라는 말이지요. 열 중 여덟은 독립을 원합니다. 독립을 하게 되면 집도 마련해 주고, 논밭도 빌려 주고, 1년 동안 먹을 것을 대 줍니다. 하여간 저마다 꼴 보기 싫어 독립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하루 종일 몰려다니면서 놉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해결하는 방식이 있나요?

그게 무지하게 힘듭니다. 저는 빨래를 할 때, 물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뜨고, 빨래를 발로 밟으면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식구들이 5년을 봐도 그 짓을 따라 하지 않습니다. 자율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본받으라 하지만 잘 안 됩니다. 월간지 식구들도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두는데, 제가 그것을 가지런히 정리하기를 6개월 동안을 해도 안 고쳐집니다. 마당을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싸움이 나지요. 항상 사소한 것이 문젭니다. 거창한 문제로 싸우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미래는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한 30년을 내다봅니다. 궁극적으로 온전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3대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공동체에 바다라는 아이가 중1인데 이 아이가 자라서 또 아이를 낳으면 3대가 되는 거지요. 그렇게 3대가 유기적으로 어울리면서 할아버지 세대는 과거를 대표하고, 아버지는 현재를, 그리고 아이는 미래를 대표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30년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변산은 15년이 되었으니 반환점을 돌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고 봅니다.

도시의 노인들은 노년을 비생산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공동체 안에서는 다르겠군요.

심하게 말하자면 현대의 도시는 수용 시설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수용 시설이 안 되려면 자연과 인간이 결합하여서 상생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수용 시설 속에서 노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자연 속에서 젊은이도 있고, 어린애도 있는 가운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이 있어야 됩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웃을 일이 없습니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노인들도 일하지 않고 받아먹기만 해서는 자긍심이 사라집니다. 도시에만 모이려고 하지 말고 국가에서 땅을 수용해서 공동체적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인을 모시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노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분들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유산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늙을 때를 잘 생각하세요.

말씀을 듣고 있으면, 저희들이 공교육 교사인데 다 버려두고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닙니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공교육을 개선해야 합니다. 가만 놔 두면 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학원이 다 맡아 버립니다. 머리만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손발을 놀리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교육에서 무엇이 빠져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풍물, 악기 같은 것도 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손 놀리고 몸 놀리는 거거든요. 우선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라도 땀 흘려서 뛰노는 것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주말에 체험 학습을 훨씬 늘려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참 좋은 것이 30분만 가면 자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가서 뛰놀게 해야 됩니다. 그러자면 수업 시간을 줄여야 됩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선생이 붙어 있는 시간도 줄어야 합니다. 도서관을 확충해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그래야 교사들도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 아니겠습니까? 교사들이 부모들과 몇 가구만이라도 연대하면,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주먹밥, 김밥 싸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학교에서도 목공실과 같은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보충 수업과 야자 같은 것을 없애야 합니다. 정말 자율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걸 위해서 교장도 구워삶아야 하고 학부모들도 설득하고 해서 현재의 학교의 모습을 자꾸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학교의 학부모회와 같은 조직은 맞벌이 부부가 참여하기도 어렵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악은 아주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의식 없는 사람들이 악을 전파하는 중간 고리 노릇을 하는데 이를 고치려면 교육 밖에 없습니다. 학부모들이 너무나 잘못된 교육을 받아서 반성 없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 교육이 급선무입니다. 부모 교육이 되면 아이들이 따라갑니다.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어 보세요. 저희가 부모 교육을 위해서 따로 부모들이 읽는 월간지 <개똥이네 집>을 냅니다. 어떤 선생님은 부모들도 참여하는 모둠 일기를 하고 있어요. 뜻있는 교사들이 학부모들을 만나서 접촉 공간을 넓혀 가야 합니다.

제가 좋은교사운동에서 한다고 하는 가정 방문을 관심 있게 봅니다. 사람들이 나쁜 것도 쉽게 배우지만 좋은 것도 잘 받아들입니다. ‘문턱 없는 밥집’도 처음 할 때는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말라고 하고, 남기면 벌금을 걷는다고 할 때 반발하고 차라리 벌금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2년이 되면서 정착이 되었고 많은 호응이 있습니다. 2호점도 내려고 합니다. 정말 좋은 교육을 하겠다고 하는 뜻이 있다면 동지들이 곧 나타납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현재의 도시 문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데도 우리는 이 삶의 관성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교육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역시 학교의 관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악은 가장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고, 의식 없는 사람이 악의 연결 고리가 된다’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 자신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현재 구조의 일부가 되어, 아이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고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본적 반성을 하게 된다. 아니 우리 스스로 그 사슬에 얽매여 같이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뷰는 유쾌하게 진행되었지만, 그 메시지는 우리 가슴에 불편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께서 좋은 책은 읽고 나서 불편한 책이라고 하였으니, 우리에게 불편한 고민을 하게 하는 대화야말로 참된 대화가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