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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박원순 변호사 : "조건을 따지면 세상은 할 게 하나도 없지요."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였으며, 2006년에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소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 사법 시험에 합격하여 1년 검사 생활을 했으며, 1983년 검사직을 버리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망원동 수재 사건, 구로 동맹 파업 사건,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 등을 맡아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후 런던정경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귀국한 뒤 참여연대를 창립하고 이끌었다. 저서로는 《희망을 심다》, 《프리윌》, 《국가보안법연구》,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 《야만시대의 기록》 등이 있다.

인터뷰 정병오 | 녹취 김진우 | 사진 조은하






이우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을 조사했는데, 1위가 박원순 변호사였다. 참여연대로부터 아름다운재단과 현재의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그는 항상 변화를 선도하는 중심에 서 있었다. 그가 얼마 전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 현장을 탐방하였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교육의 희망은 어떤 것일까? 2009년 6월 2일, 평창동으로 새로 이사한 희망제작소에서 그를 만나 보았다.




예전에 참여연대를 하시면서 거시 담론을 얘기하시다가 몇 년 전부터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시는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현장 속에 있지 않으면 늘 공론(空論)을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잖아요. 끊임없이 현장 속에 있지 않으면 자기가 하는 생각과 실천이 잘못된 바탕 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자칫하면 도식화되고 규격화되고 박제화되는 거죠. 가령 이데올로기도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이런 식으로 보는데 가 보면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 다르잖아요. 정권도, 정책도, 사람도, 실천도 다 바뀌는데 그걸 우리가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우리가 틀린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살아 움직이는 것과 늘 소통을 해야죠.

실제로 현장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어떤 현장의 5명 정도의 이야기만 들으면 그 방면의 전문가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전문가는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다 들으면 굉장히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제가 지역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이해와 지식을 얻게 되었어요. 이번에 핀란드 교육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만 듣다가 이번에 가서 다 인터뷰를 했잖아요. 그러면서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알게 되었잖아요. 인터뷰는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만 하는 것이 아니고요.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글을 쓸 때나 행정가가 행정을 펼 때나 교사가 아이를 가르칠 때나 활동가가 실천 활동을 할 때도 그게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파악하신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그 이야기는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건데요. 간단히 말하면 지금 거대한 변화의 와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배가 큰 유턴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조금 추상화시킨다면 이를테면 개발, 성장, 또는 효율과 경쟁의 시대로부터 다양화, 개성, 창의성, 문화와 예술, 디자인, 생태, 상생, 시민 사회, ‘투명성과 책임성’과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시대로의 변화의 와중에 있다는 것이죠. 이런 변화의 와중에 현 정부는 새로운 시대와 맞지 않는 담론을 갖고 나타났기 때문에 시대의 강물의 흐름과 거슬리게 되는 거죠. 자연히 저항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교육의 내용도 늘 미래를 준비해야 되잖아요. 핀란드, 스웨덴에 가서 본 것도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 생태적인 사고 이런 것들이잖아요.

이 시대의 흐름 속에 학교는 어디쯤 와 있다고 보시는지요?

우리가 늘 경계를 짓고 그 경계 속에 안주하기 쉽거든요. 그러나 21세기는 이런 경계를 넘어서 서로가 혼융하고 네트워킹하고, 경계를 침범하면서 뭔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요. 학교의 경우 선생님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실이라는 제약된 공간 속에서 지내다 보면 옛날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가 쉽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 변화의 현장 속에서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데, 그게 단절되어 버리면 점점 흐름에 뒤처지거나 사회에 맞지 않은 아이들을 길러 낼 가능성이 있지요. 그래서 대안 학교라든지 새로운 학교들이 중요하고요. 예를 들어, 희망제작소도 굉장히 열심히 교육을 합니다. 이를테면 은퇴한 CEO를 위한 교육이라든지, 젊은이에게 사회 변화의 꿈을 심어 주는 social designer school 등을 열고 있어요. 이런 교육은 대학에서는 못해요. 이미 고착화되어 있고 새로운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별로 열정을 갖고 쳐다보고자 하는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먼저 보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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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경우에 학교 현장에서 교사를 제약하고 있는 입시와 관료제 때문에 아무리 해도 안 된다, 먼저 학벌 사회를 고쳐야 한다든지,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조건을 따지면 세상은 할 게 하나도 없다고 봐요. 변명 없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조건이 완비된 곳은 천국에도 없다고 생각해요. 늘 한계 지워진 조건과 환경 속에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그런 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닥쳐진 어떤 제약이나 어떤 불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사실은 우리를 훨씬 더 살아 있게 만드는,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라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프레네라든지 덴마크의 달가스라든지 하는 사람들이 일한 시기는 훨씬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부산에 허아람 씨가 하는 인디고 서원도 어떻게 보면 입시 교육이잖아요. 사교육이잖아요. 하지만 거기에 인문학이 들어가고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노력이 담기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됐잖아요.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설사 수능이나 논술조차도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애정과 저런 노력이 가미되면 저는 얼마든지 인간적인 교육이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학교 공간에서는 못하냐 이거에요. 실업계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저는 사람들이 당장은 형식과 타이틀을 보지만 결국에는 그 사람의 실질적 내용을 가지고 판단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회사에 취직해서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직업적 비전, 자질, 전문성, 열성, 성실성, 이런 것들을 딱 갖춘 그런 아이들을 길러 낸다고 한다면 기업에서 왜 그런 아이들을 안 뽑겠습니까?


저는 그런 신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왜 옴니아(핀란드의 직업 고등학교)를 못합니까? 왜 그런 실험을 못합니까? 제가 아름다운 가게를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헌 물건은 안 산다고 했어요. 그러면 이 사업을 절대 못하죠. 바꿔야죠. 의식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언론을 통해서 캠페인도 하고,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내고,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바꾸어 내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늘 창조적 도전을 해야 합니다.
대안 학교라는 것이 처음에는 몇 분의 도전이었지만 그것이 바람을 일으키고 제도권을 바꾸어 내기도 했듯이,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상황들이 있지만 기죽고 포기하기보다는 나 하나부터, 내가 있는 현장부터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벤치마킹하고 열정을 전수받아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보면 늘 그렇잖아요. 노예제 폐지를 한 윌버포스도 그 당시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했잖아요. 영국이라는 식민 대국의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거잖아요. 당대에 엄청난 반체제 인사였지요. 하지만 기독교적인 정의감에 기초해서 이루어 냈잖아요. 소수의 창조적 도전이 정말 중요하지요.
좋은교사운동은 전체를 보면 소수지만, 소수가 아니잖아요. 결심하고 결단하면요. 이런 건 가능하죠. 예컨대, 다음에 교육감 후보를 제대로 내세요. 그런데 준비 하나도 안 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 하게 되면 돈 많고 권력에 줄을 대고 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어요. 정말 괜찮은 교육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을 내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하게 운동하고 좋은 정책을 갈무리해 보세요. 시민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워낙 다이나믹하기 때문에, 뭐든지 하나의 주장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면 그것이 사회의 아젠다가 되고 영향을 미칩니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에 달린 것인데요. 예를 들어 좋은교사운동이 성명을 하나 내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계속 인터넷에 돌아다니잖아요. 그러면 10명이 보고 100명이 보고 1000명이 보잖아요. 그 중에 한 사람은 굉장히 깊이 있게 보고 변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당장 효과가 없다고 좌절할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변호사님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일구어 가시는데 그러한 생각들의 뿌리는 어떻게 형성이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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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나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문리가 터진다고 하잖아요. 하나의 작은 일을 깊이 파다 보면 전체가 보이기도 하고요. 하나의 일을 오래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이 제 직업이니 분야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요. 그리고 이미 자리를 잡고 잘 돌아가는 곳에는 제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욕심은 있고 좀 더 잘하고 싶고 한데, 그게 지나다 보면 사조직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 중심에 오래 있다 보면 조직의 의인화 현상이 있어요. 그런 것을 굉장히 냉혹하게 뿌리치지 않으면 이별하기 힘들어요.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새로운 과제들이 생기고 새로운 노하우가 생기거든요.


운동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운동가를 마이너리티(minority)라고 정의해요. majority를 지향하면서 minority로 시작하는 거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죠. 돈보다 더 필요한 건 사람이지요. 그런데 사람을 모아 내려면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이 없으면 안 된다고 봐요. 다들 바쁜 세상에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되느냐 하는 것이 설득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것은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해요. 명분이 뚜렷하고 신뢰가 있고 나아가서 저 일이 되겠구나 하는 신뢰를 주어야죠.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굉장히 평범했어요. 7살에 학교에 들어갔는데,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개구쟁인데다 아들 귀한 집에 자라다 보니 성격도 문제가 있었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루는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어요. 생전에 칭찬을 받지 못했는데, 그날 선생님이 바람을 가지고 만든 기계가 뭐냐고 질문을 하셔서, 제가 손을 들고 집에서 쓰는 풍로에 대해 설명을 하니까 굉장히 칭찬을 하시는 거예요. 아마 평소 공부도 못하던 아이가 정답을 맞추니까 더 칭찬을 하셨는지도 몰라요. 집에 가는데 다시 불러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칭찬을 하시더군요. 제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 때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지요.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 살았는데, 시골에 산다는 것이 제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시골은 보기보다는 힘든 것이 많아요. 농번기가 되면 아이들도 움직여야 되고, 왕복 30리를 추위를 이기고 걸어야 되는데, 그런 것이 인내심을 키우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일에도 필요한 것이면 물러나지 않을 자신은 생긴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도서반에 들어서 책을 많이 읽었고요. 대학에 들어와서는 감옥에 갇혔었지요. 저는 원래 운동권도 아니었는데 현장에서 데모하다가 잡혀 간 것이거든요. 하지만 감옥에 가 보니까 의식이 생기잖아요. 감옥에 안 갇혔으면 지금쯤 서울지검 공안부장 같은 걸 하고 있었겠죠.

교사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공문이나 잡무 등 많은 일로 지칠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데리고 매일 산다는 것이 저희들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일 것 같아요. 늘 열정이 마모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은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키워 낸다는 것은 나무를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무라는 것이 20년, 30년 되면 좋은 숲이 될 수 있잖아요. 내가 키워 낸 아이들이 10년이 지나 몇 백 명이 되면 그 아이가 만들어 내는 세상은 달라지는 거잖아요. 한 아이가 세상을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거든요. 열정과 창의성을 가지고 한 명이라도 바로 키워 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바꾸고 사람을 키우는 일은 많은 시련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볼 만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 드린 제 은사님이 박실경 선생님이신데, 사실 동네 아저씨 같은 분이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제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거든요. 그런 경험이 아니었다면 지금 제가 뒷골목을 전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저는 물론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한 분의 힘으로도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선생님들은 학교 안에서뿐 아니라 지역에서는 유지로 많은 영향을 끼칠 수가 있죠. 그런 것들이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정리하면서 박실경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뇌리에 남는다. 박원순 변호사가 화려하게 꽃 피운 사회 개혁의 뿌리에 한 시골 선생님이 뿌린 작은 씨앗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수업의 한 장면에 불과한 그 순간이 큰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면서, 오늘 우리가 뿌리는 수많은 말과 표정과 가르침이 어떤 열매를 가지고 올 것인지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교실에서 미래가 만들어진다. 교육은 백년의 큰 설계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희망제작소로 들어가는 계단에 붙은 희망 씨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