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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4. 기고 2 : 고교 환경 변화에 따른 바람직한 입시 제도

 

특집4. 기고 2

고교 환경 변화에 따른 바람직한 입시 제도

김 승 현


2009 개정 교육 과정과 절대 평가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고교 교육의 환경 변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대입 전형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하여 애초의 도입 취지인 자격 고사 성격의 시험으로 전환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1)

그리고 이와 같이 수능의 영향력이 축소된 환경에서 대입 전형의 핵심은 고교-대학 연계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대학별 고사와 같은 별도의 시험 형태가 아니라 학생들이 고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과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며 이수한 정규 교육 과정의 이수 결과가 대입 전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림 1]
일반계 고교의 교육 과정과 대학의 교육 과정의 동조화(coupling) (홍후조, 2008)

고교 교육 과정
(과정)

고교 수업과
진로 지도

대학 입학 전형
(고교 과정 반영)

대학 교육 과정(전공)



내신 교과의 모집 단위별 특성화 반영

정규 교육 과정의 이수 결과란 우선 학생의 교육 과정 이수 경로를 의미한다. 기존의 학업 성취도와 함께 학생이 어떤 선택 과목을 얼마나 수강했는지 여부는 그 학생의 교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나타내며, 이는 전공에 대한 관심과 의지 등 전공 적합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전형 자료가 된다.

따라서 대입 전형은 모집 단위별 성격에 따라 지원 자격 조건이나 반영 비율의 다양화, 필수 이수 과목 지정 등의 형태로 내신 교과의 반영을 특성화할 필요가 있다. 만약 대입 전형에서 모집 단위별 특성에 따른 교과목 반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수능의 영향력이 축소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의 흥미나 적성 및 진로(전공) 계획보다는 대입 전형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점수 따기에 유리한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 과정을 이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학을 기준으로 본다면, 어문 계열과 같이 수학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전공, 경상 계열과 같이 수학이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전공에 따라, 그리고 자연 계열일지라도 의대, 생명 공학 등과 같이 수학의 활용 빈도가 높지 않은 전공, 물리학이나 공학과 같이 상당 수준의 수학을 필요로 하는 전공 등 모집 단위의 특성에 따라 지원 자격으로 요구하는 수학 관련 교과 이수 범위(예를 들어, 지원 자격으로 수학 관련 교과 ○○ 단위 이상과 같은 형태로 제시)가 달라질 필요가 있으며, 반영 방법이나 비율에서 역시 전공에서 차지하는 수학 교과의 비중에 따라 차이를 두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국어나 영어, 탐구 과목 및 예체능 과목 등의 선택 과목 이수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 [표 1]은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KU 전공 적합 전형‘의 학교생활 기록부 반영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같은 인문 계열에서도 전공의 성격에 따라 교과목별 반영 비율을 달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표 1]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KU 전공 적합 전형’ 학교생활 기록부 반영 방법

모집 단위
(1, 2, 3학년 공통)

교과목별 반영 비율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국어국문학과

40%

20%

20%

20%

영어영문학과

20%

40%

20%

20%

중어중문학과

25%

25%

25%

25%

커뮤니케이션학과

40%

20%

-

40%

문화콘텐츠학과

25%

25%

25%

25%

자료 : 김승현(2010). ‘사교육 걱정 없는’ 대학입학전형과 고교 교육력 제고 종합방안 탐색.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또한 반영 방법이나 비율을 특성화하는 방식 이외에 아래에 제시된 [표 2]와 같이 모집 단위별 특성에 따라 필수 이수 과목을 지정하는 방식의 특성화도 가능하다.


[표 2] 대학 전공 학습을 계속하기 위한 고교의 선수 학습 과목 3가지(예시)

 

계열

해당 학과

학생부 반영 교과

제1교과군[비중 상]

제2교과군[비중 중]

제3교과군[비중 하]

1

인문/
사회

법과대, 행정학(정경대), 언론학부

국어(한문), 외국어

사회(윤리)

과학

인문학부(문과대), 교육학/국어교육/지리교육/역사교육(사범대)

국어(한문), 외국어

사회(윤리)

과학

2

국제/
외국어

국제어문학부(문과대), 국제학부, 정치외교학(정경대), 영어교육(사범대)

외국어, 제2외국어

국어, 사회(세계사, 세계지리)

과학

3

수리/
경제

경영대, 경제학(정경대), 식품자원경제학과(생명환경과학대)

국어(한문), 외국어

수학

사회/과학

수학(이과대학), 수학교육(사범대), 통계학(정경대)

수학, 외국어

국어

과학/사회

4

과학/
공학

물리/화학/지구환경과학(이과대학), 공대, 정보통신대, 컴퓨터교육(사범대)

수학, 과학

외국어

국어/사회

5

의약/
생명

의과대, 간호대, 생명유전공학부/생명산업과학부/식품과학부/환경생태공학부(생명환경과학대), 가정교육(사범대)

국어, 외국어

과학(생물, 화학)

수학/사회

* 표에서 (  )안은 특별히 강조할 하위 영역을 의미하고, /는 어느 쪽을 강조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함.
    
자료 : 안선회(2009). 고교 교육 다양화와 연계된 대입전형의 변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토론회. 재인용.


이와 같은 대입 전형 방식은 성적 우수 학생을 독점하기 위해 모집 단위의 특성과 무관하게 ‘전 과목 성적 우수자’를 선발하거나 예컨대 인문 계열에서조차 수학의 반영 비율을 높여 ‘성적 우수자’를 가려 뽑는 현재의 대입 전형 운영 행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대입 전형이 운영될 때 비로소 학생들은 고교 단계에서 자신의 진로와 전공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수능과 내신의 선택 과목을 결정할 것이며, 단위 학교는 현재의 경직된 문․이과 체제를 뛰어넘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정규 수업과 평가를 통한 교사의 정성적 평가 반영

고교와 대학 교육의 연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모집 단위별 특성화 반영과 함께 대입 전형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은 교사가 정규 수업 및 평가를 통해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개별 학생에 대해 기록한 정성적 평가의 내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빙 자료(수행 평가 포트폴리오 등)다. 그러나 이는 최근 성적순 선발의 폐해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부터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 현행 입학 사정관제의 구성과 운영 방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의 입학 사정관 전형에서는 정규 교육 과정, 즉 일상적인 수업과 평가에서 준비되는 것보다는 정규 교육 과정 밖에서 따로 준비해야 할 영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교 환경의 변화를 지원하는 새로운 대입 전형은 정규 교과 수업과 평가 그리고 정규 교육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 체험 활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신호를 분명하게 고교에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입 전형의 평가 요소는 ‘기존의 학업 성취도 + 정규 교과/비교과 활동에 대한 교사의 정성적 평가 + 이를 뒷받침하는 증빙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즉, 정규 교육 과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고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얻어진 활동과 경험을 핵심 전형 요소로 삼아, 이에 대한 심층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는 교과 영역은 물론이고 비교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비교과 영역의 경우에도 특목고의 ‘자기 주도 학습 전형’에서와 같이 학교 밖의 활동과 관련된 요소는 완전히 배제하고 창의적 체험 활동 등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수행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프로젝트와 같은 활동과 결과물들을 중심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 학생부에 기록된 교사의 정성적 평가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정규 교과/비교과 수업에서 수행했던 결과물을 포트폴리오로 내게 하고, 자기 소개서와 교사 추천서에 역시 정규 수업을 통해 얻었던 인상적인 학습 경험이나 관찰의 결과를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한다.

방과 후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과와 관련된 심화 교과, 전문 교과 이수 결과는 전형 요소에서 제외하거나 일부 전형에서 최소화된 인원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런 내용들이 전형에서 우대를 받게 되면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은 특목고 등 일부 고교에게만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 등 비교과 영역의 활동들 역시 특정한 요소로 한정 짓기가 어렵고 부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가운데 관련 내용들이 지나치게 다양하고 광범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전형 요소에서 제외한다.

사실 현실에서 정규 교육 과정 안의 활동과 밖의 활동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모호한 것도 사실이고 선의의 피해도 생길 수 있지만 대학 입시를 둘러싼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쟁 상황을 고려할 때,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정규 교육 과정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대입 전형이 운영된다면 최근 입학 사정관제와 관련하여 지적되고 있는 문제들(전형의 복잡함, 부모 영향력의 확대, 불투명성으로 인한 선발의 왜곡)을 상당한 정도로 해결하면서, 최근 학생부의 서술 평가가 과거에 비해 내실을 더하고 있는 것과 같이 기존의 진학 지도 패러다임 관행에 머물러 있는 고교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대입 전형을 점진적, 단계적으로 확대

기존의 학업 성취도와 함께 정규 교육 과정 이수 결과에 대한 질적 평가 및 과정 평가 중심으로 진행되는 대입 전형을 전면화하거나 급속하게 확대하는 것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현재 단위 학교 수준에서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못하며, 교사의 정성적 평가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낼 정도의 교육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대학 입장에서 봐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대입 전형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제도가 시행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는 기존과 같이 내신과 수능의 결과를 성적 중심으로 반영하는 전형 방식과 수능의 영향력은 제외하거나 최소화하면서 내신 성적과 함께 이에 대한 교사의 정성적 평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대입 전형 방식이 경쟁하면서 공존하게 될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입장에서 보면 이런 공존의 상황에서 점차 새로운 방식의 대입 전형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특목고 등에 비해 수능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지금도 수시 전형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대입 전형이 특목고 등 일부 학교에게 유리한 특수한 프로그램 중심이 아닌 정규 교육 과정의 이수 경로와 함께 교사의 정성적 평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일반계 고등학교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새로운 대입 전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고교 환경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전형 요소를 특목고 등 일부 우수한 학교에게 유리한 방식이 아니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전반적인 변화와 혁신을 촉구하고 유인하는 방향으로 대입 전형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입 전형에서 우연적 요소(임의성)의 확대

대입 전형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점수 위주로 엄격하게 선발하던 과거의 변별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우며 어느 정도의 우연적 요소(임의성)가 개입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연적 요소(임의성)가 확대된다는 것은 일정한 수준을 갖춘 우수한 학생들이 지금과 같이 총점 1~2점 차이에 의해 합격 불합격 여부가 결정되고 그 결과로 대학의 서열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수준의 여러 우수 대학에 어느 정도의 임의성을 가지고 선발되어 입학 후 대학 교육의 과정에서 경쟁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권 대학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현재의 점수 위주의 변별력 요구가 선발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부여할 수 있으나 교육적으로 타당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학들이 변별력 중심의 선발 철학을 바꾸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여 교육 경쟁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태도와 사고를 전환하는 것은 고교와 대학의 교육적 기능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대입 전형이 이렇게 바뀔 때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고교 교육의 환경 변화가 비로소 의미 있는 방향으로 정착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대입 전형의 개선에 선행되어야 한다.



김승현

숭실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2010년부터 휴직하고 좋은교사운동 교육 과정 위원회 부위원장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 실장을 맡아 교육 과정과 대입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k7336@hanmail.net





 


1) 자격 고사는 2009 개정 교육 과정에서 기초와 탐구 영역 교과에 해당하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교과의 필수 이수 단위 수준(2007 교육 과정의 국민 공통 기본 과정인 고1 수준)의 시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