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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에티오피아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 에티오피아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 날씨가 많이 차가워지면서 어느새 가을도 금세 자취를 감출 것 같습니다. 지금 이맘때쯤이면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무슨 가을이냐고요? 에티오피아에 가을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가을 하늘처럼 맑은 하늘과 차디찬 바람을 밤과 낮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의 고온 건조한 기후가 주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장 마음 깊이 느끼고 감성에 젖을 수 있는 여학생들의 처지가 생각나는 11월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넌 몇 살이니? 에티오피아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나이 대가 다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다양한 연령층의.. 더보기
김치 #2 김치 #2 김치가 왔다 그러나 내가 받은 것은 차가운 새벽물에 절인 배추를 흔드느라 불그레 부어 오른 할매의 퉁퉁한 손 고추따라 벌겋게 물든 당신의 손 그리고 옴팡지게 두터운 배춧잎 사이 사이 추억처럼 익은 우리 둘의 시시콜콜한 속것 해와 땀과 눈물로 간하고도 모자라 푸른 앞바다와 할매의 간소한 텃밭 자주 다니는 동네 시장 저마다 한 가지씩 가방에 이름표 달고 할매 손사래질 따라 바람 타고 넘어 온 모양새가 영 겁먹어서 신속한 것이 꼭 육이오동란 피난가족 같다 김치 한 줄 째서 입에 넣다가 치, 내 눈이 붉어지는데 꽃 똑똑 따서 길에 뿌리는 아이들 혼내키려고 치, 여기까지 넘어 온 할매 손이 더 벌겋구만 속도 모르고 김치는 자꾸 자꾸 목으로 넘어 오는구만 치, 기장 앞바다와 동네 시장바닥 이야기까지 다 .. 더보기
대학생 선생님이 오셨어요 작은 학교, 큰 이야기 #6 대학생 선생님이 오셨어요 작은 학교에 찾아온 손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 한적한 시골 분교에 대학생 손님들이 찾아왔다. 비욘드 더 마인드(beyond the mind)라는 대학생 재능 나눔 단체의 대학생들이 아이들과 함께 여름 캠프를 하기 위해 우리 학교에 온 것이다. 대학생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고,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곧 자신들의 다양한 전공을 살려 일주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다. 월요일 아침, 기대에 부푼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들었다. 형과 누나, 언니와 오빠 같은 대학생 선생님들과의 첫 만남!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해 했지만, 선생님들과 자기소개와 게임도 하고, 운동장에.. 더보기
에티오피아에서 학생로 사는 법 에티오피아에서 학생으로 사는 법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하늘의 높이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10월의 완연한 가을 하늘입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청명해지면 자연스레 아프리카 하늘이 떠오르는데요. 흔히, 일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아프리카는 하루 종일 해가 따갑게 내리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살았던 곳은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고 날씨도 그리 덥지 않은 날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문득 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축구도 하고 수업도 해 보고 마음이 불쑥 듭니다. ‘자 - Ruler’를 모르는 학생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한국에서는 전혀 겪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들과 ‘점과 직선’에 대해서 수업.. 더보기
너희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란다 너희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란다 선생님이 요즘은 힘이 안 나는구나 나는 언제나 좌절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사람이고, 언제든 ‘아자 아자 힘내기!’에 강한 유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참 힘이 안 난다. 너희들에게 늘 “기쁨과 슬픔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늘 ‘기쁨’을 선택하자” 하고 가르치는 내가. 왜 그럴까? “딸내미들, 이제 시험 막바지라 스트레스 받고 있제?”라고 말하면서도 정말 받고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심. 그것은 아마 당신들이 유난히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장난기 많고 심지어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기 때문! 너희들을 보면, 내 고등학교 생활이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어땠더라? 선생님들이 보시기엔 잔소리할 것 없는 착실한(응?) 아이였을 것 .. 더보기
청소를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간밤에 무신이가 교실에 왔다가 갔다 책상 위에 연필도 올려 놓고 지우개도 잘라서 서랍에 집어 넣고 못다 그린 스펀지밥도 바닥에 떨어 뜨려 놓고 갔다 나는 아침에 청소를 하다가 왜 무신이만 밤마다 왔다 가는지 생각했다 왜 무신이만 콜라를 쏟아 놓고 가는지 왜 무신이만 옷을 훌렁 다 벗어 두고 가는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왜 무신이만 그러면 안되는지 나는 왜 밤새 아무 것도 놓고 가지를 못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2010. 11. 5. ) 더보기
하나님의 고집 하나님의 고집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 3장 8절) 그들에겐 광야가 필요했다 본문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다시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체험하였지만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해서 가끔은 난동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나안 땅과 비슷한 전투력을 가진 가나안 주변의 족속들을 상대로 스파링을 치루며 조금씩 단련되어졌고, 그런 작은 승리들을 통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 요단강만 넘으면 그들은 그토록 꿈에서 그렸던 약속의 .. 더보기
사랑, 고것 참 아줌마 쌤의 계속되는 교사도전기 18 사랑, 고것 참 커플 하나 반별 댄스 대회 때 남녀 열 커플을 억지로 만들어 놓았더니 지들끼리 좋아라 늦은 밤까지 연습하더라는 이야기를 언젠간 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런데 고것들 중 두 커플이 1학기말 공식적으로 커플을 선언하더니 방학 사이 뭔 일이 생겼는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부 잘하고, 키 크고, 잘생긴 우리 반 선남과 맑은 두 눈에 귀여운 미소, 긍정적 마인드의 선녀의 이상적 만남이어서 우리 반 녀석들뿐 아니라 둘을 알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물론 살짝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선남은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베이스 기타, 다양한 독서 등 자기 관리가 잘되는 녀석인데 반해 선녀는 지각쟁이에 과제물 미제출, 준비물 미비 등 평범함을.. 더보기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작은 학교, 큰 이야기 #5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골리앗을 이긴 놈 우리 반 다윗에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윗은 자기보다 훨씬 큰 골리앗을 무서워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싸워 주셨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힘이 엄청 세거든.” 며칠 후에 아침부터 다윗이가 나에게 와서 자랑을 한다. “선생님, 저 골리앗 이긴 놈이에요.” 결혼 예정설 부인하다 학기 초부터 채연이와 결혼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다윗이가 어느 날은 나에게 조심스레 이렇게 이야기한다. “선생님, 저 채연이랑 결혼 안 할 거예요.” “왜?” “사람들이 막 놀려요.” “뭐라고 놀려?” “채연이 아이유 닮았다고요.” 등교 거부 사건 우리 반 남학생 중 다윗은 씩씩하고 남자다운 모습이 인상적인 아이다. 게다가 솔직하고 순수한 .. 더보기
에티오피아에서 교사로 사는 법 에티오피아에서 교사로 사는 법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름 방학을 보내고 이제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선생님들. 여름 방학의 뜨거웠던 추억을 멀리하고 교육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 얼굴은 하나같이 시커멓게 그을렸고 더욱 키가 자란 듯 보입니다.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고 흐뭇하기만 합니다. 에티오피아 아이들과 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티오피아도 지금쯤이면 여름 방학을 잘 보내고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때입니다. 특히, 에티오피아 교사들은 현장으로 돌아오는 얼굴 표정이 더욱 비장하기만 합니다. 교사가 되기까지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적으로 교사들의 사회적 위치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인식과 교사를 하느니 차라리 막노동으로 돈을 더 많이 벌 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