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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교실과 세상을 지배하는 것들


교실과 세상을 지배하는 것들

『교사로 산다는 것』, 조너선 코졸, 양철북
『1984』, 조지 오웰, 민음사

대학에 들어갈 때, 철학책 읽고 토론하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가 아이들 앞에 설 때 본으로 삼을 만한 교수님을 강의실에서 만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저 권위만 내세우는 직업인이었습니다. 윤리 의식이 모자란 사람, 고등학교 때보다 못한 수업을 하는 사람, 편협한 생각으로 사람을 옥죄며 학점으로 위협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모범을 보이지 않고 강요하면 아예 무시했습니다.

교사가 되고나서 본받기 싫은 교사를 많이 만났습니다. 본받을 만한 교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는 10년도 더 지나 ‘좋은교사’를 만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교육 과정과 교과서도 권위에 도전하는 제 마음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가끔 만나는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내용’을 핑계 삼아 교과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재구성했습니다. 말이 재구성이지 ‘내 멋대로’ 가르쳤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좋은 추억이 많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미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권위를 의심하는 제 성향 때문에 저는 국가가 요구하는 내용은 일단 내 가치관을 통과하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육 과정이 편협하기 때문에 편협한 생각을 가진 제 판단이 오히려 올바를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잘못된 제 생각과 태도를 고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타성과 무기력을 가르치지 말자

조너선 코졸은 권위에 대한 반항아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통찰과 분석으로 교육계의 촘스키로 불립니다.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워 온 교육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비판 지성인입니다. 그는 학교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생각을 주입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권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증거를 밝힙니다. 학교가 진실, 아름다움, 위대한 영혼의 추구, 인간적인 가치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 말하지만 실상은 포장만 요란하지 내용은 주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입한다는 겁니다.

미국 교과서 역시 적당한 사실만 알려 주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기술되었나 봅니다. 코졸은 올바른 가치를 위해 정부에 대항했던 인물들이 사라진 교과서를 비판합니다. 인종 차별적인 생각을 가졌던 링컨의 발언은 삭제하고 정직한 모습만 보여 줍니다. 파업 참가와 단식,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도로시 데이 같은 의지적 여성들은 전복적인 인물로 취급해 교과서에 싣지 않습니다. 헬렌 켈러가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이야기는 실으면서 노동 착취가 일어나는 빈민가를 방문하고 탐욕스러운 지도자와 기득권층에 대해 도전한 내용은 싣지 않습니다. 결국 기득권층이 알려 주고 싶은 내용만 교과서에 남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은 저자가 30년 전에 썼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도로시 데이나 헬렌 켈러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지만 미국 우월주의와 사회 질서 유지 위주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히틀러의 명령을 철저히 따른 아돌프 아이히만의 순종적 태도는 독일 공립 학교에서 길러졌다고 합니다. 잘 통제된 공립 학교에서 복종하는 것을 배우면, 아이히만처럼 지배자들이 요구하는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을 갖춘 시민이 된다고 합니다. 코졸은 교사가 물들지 말고 올바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상처 받기 싫어 세운 보호막에서 내려와, 생각을 바꿔 주는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믿음을 버리고 올바른 것이라면 극단을 선택할 줄 아는 학생을 길러 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 사회에서는 극단주의자였다면서….

저자는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눈빛으로 메시지를 뿜어내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며 금권을 독점한 지배 세력에게 순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사가 이런 모습으로 가르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지배자의 극단적인 모습

『1984』를 읽기 전에 저는 조지 오웰을 유명한 작가로만 생각했습니다. 이 책 역시 『동물농장』처럼 미래 사회를 재미난 우화로 표현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984』는 ‘빅 브라더’로 불리는 절대 권력을 가진 통치자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표현합니다. 곳곳마다 텔레스크린(감시 도구로 CCTV 기능에 스피커 역할도 하는 도구)이 있어 사람들을 감시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말도 흘러나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다가 잠시 다른 일을 위해 일어선다면 “○○선생, 어디 가는 거야! 마저 다 읽고 가야지!”라는 말이 곧바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주인공 윈스턴은 과거 기록을 조작하는 부서에서 일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일에 매달려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1년 12월까지 주가를 3000으로 만들겠다고 대통령이 말했는데 1700밖에 안 된다고 가정합시다. 주가 3000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면 1700인 지금은 문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3000이라고 말한 기록을 1700이라고 말했다고 조작합니다. 과거의 모든 기록(신문, 방송자료, 논문, 책…)을 주가 1700으로 바꿉니다. 지금이야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장 온 나라가 들끓으며 대통령 탄핵을 말하겠지만 그 사회는 이런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나친 통제와 감시, 조직화된 조작으로 사람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조작인지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이 가장 원하는 모습이지요.

조지 오웰의 천재성이 드러난 부분은 3부입니다. 윈스턴이 왜곡과 조작으로 세워진 나라를 뒤엎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발각되어 잡힙니다. 고문과 회유, 협박과 위협에 갈등하는 윈스턴이 결국 신념을 포기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윈스턴을 고문한 오브라이언과 윈스턴이 대화하는 내용이 절묘합니다. 오브라이언은 적대자를 무조건 고문해서 죽이지 않습니다. 단순한 위협과 고통은 순교자를 만들어 반대자들을 더 격렬히 타오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극렬히 반대하다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합니다. 겉으로는 반대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으로 놔두지도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결국은 자신이 믿었던 진실이 한순간의 몽상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조지 오웰이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회는 사실 기득권층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략을 과장해서 보여 준 겁니다. 기존 질서를 의심하지 말고 순응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것을 믿으면서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의심할 능력마저 빼앗아 갑니다. 시험 잘 보고 좋은 성적 받아서 돈 많이 버는 직장에서 여유를 누리며 살기 위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

조너선 코졸 역시 정부가 교육 과정을 통제해서 나라에 충성하는 충실한 일꾼들만을 길러 내려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위험한 매체는 방송입니다. 2~3살 아기일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며 수많은 광고와 이미지에 노출된 아이들이 결국은 방송의 노예, 방송의 제자, 방송의 아들딸이 됩니다. 사라는 물건을 사고, 하라는 행동을 하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충실한 노예들이 됩니다. 가끔씩 이상한 과거 경험에 의해 저처럼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생길지 모르지만 대세를 거스르긴 어렵습니다.

제가 하는 독서 모임에서 중학생들과 『1984』로 독서 토론을 했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부르키나파소를 궁핍으로 몰아넣은 프랑스 지배층의 음모를 살폈습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서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미국의 행동을 따져 봤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 사회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빅 브라더’인지 물었더니 아이들은 ‘성적, 경쟁, 경제 논리, 부모, 방송, 국가’를 꼽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죠. “너희들처럼 생각하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1984’를 바꾼다. 이 작은 독서 모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두 책 읽으시고 같은 소망을 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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