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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 2』, 이덕일, 김영사

  사는 삼척은 대금굴․환선굴, 해양레일바이크와 아기자기한 해수욕장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이죠. 하지만 20년 전에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탄광이 많아서 강물을 까맣게 그린 아이가 전국 대회에서 ‘솔직함’ 때문에 상을 받은 배경을 가진 곳입니다. ‘무장 공비가 나타난 첩첩산골’이기도 하지요. 무장 공비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도 삼척은 여전히 시골로 통합니다. 가끔 서울에 갈 때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름난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이승휴의 외가여서 ‘두타산 천은사(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지은 곳)’가 유명해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제왕운기’가 어떤 내용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의 지혜로 이성계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이것 역시 아는 사람이 적죠. 두 사람이 유명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동네 자랑하려고 다른 지역 출신인 ‘이사부장군’까지 삼척을 빛낸 사람으로 만들지만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꼭 알리고 싶습니다.

초등학생일 때 당번을 정해 ‘육향산’이라는 아주 작은 동산에서 낙엽을 쓸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석이 몇 개 있었는데 ‘척주동해비’라고 합니다. 조수(해일)가 밀려올 때 허목 선생이 동해를 예찬하는 내용을 써서 물리친 비석으로, 폭풍이 비석을 넘지 않았다고 전해 옵니다. 어렸을 때는 기독교 배경을 가진 제 눈에 허목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일 때 송시열이 병에 걸렸을 때 병을 낫게 하려고 ‘비상(독약)’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송시열 문하생들은 반대파인 허목이 독약을 보냈으니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송시열은 ‘사상적으로는 반대파지만 인품과 학문으로는 존경할 만하다’며 비상을 먹고 나았습니다. 허목은 송시열의 병이 ‘독으로 독을 다스리는 경우’라고 보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독약을 보냈습니다.

‘내가 알던 허목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를 읽고 허목을 다시 보았습니다. 효종대왕이 돌아가시고 효종에 대한 인조 계비 조대비의 복상 기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송시열은 상복을 1년 동안 입어야 한다고 했고 허목은 3년을 입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예송 논쟁이라 합니다. 허목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삼척부사로 축출되었고 송시열은 주도권을 잡습니다. 송시열은 서인의 우두머리였고 허목은 남인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상복을 1년 입어야 한다는 서인의 주장은 왕이 사대부와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대부도 상복을 1년 입습니다. 왕이 사대부의 대표라는 서인과 달리 남인은 왕권 강화를 주장했습니다. 상복을 3년 입는다는 말은 왕이 사대부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정약용 역시 책에서 3년 복상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송시열 이후 조선은 서인이 권력을 잡습니다.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백성을 쥐어짜내는 지경에 이릅니다. 송시열이 이런 결말을 예상하진 못했더라도 결과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 자기 배만 위하는 우둔의 세월을 만들었습니다.

 

어둠의 시대에 죽어 가면서 새 시대를 소망한 사람들

문제 풀이 중심의 공부를 한 우리는 정약용을 거중기 제작으로 수원성을 만든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 실학자로 외웁니다. 이익이 성호사설을 지었다는 걸 저도 외웠지만 ‘성호사설’ 안에 이익이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스승을 두지 않은 정약용이 왜 이익을 스승으로 삼았는지는 모릅니다. 마음을 담지 않는 공부를 합니다. 정약용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선비였습니다. 소요 사태의 주도자는 사형해야 하지만 형편을 살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살려 줍니다.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정약용은 백성을 위하는 관리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실제로 실천했습니다. 올바른 재판을 위한 흠흠신서의 주인공이며, 국가 기구 전반의 개혁 원리를 담은 경세유표를 실천했습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한국사 최대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던 시대의 비망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정조가 다스리던 시대는 희망의 시대였습니다. 정조가 10년만 더 오래 살았다면 1800년대는 완전히 다른 역사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순조가 성인이 되는 걸 정조가 보았다면 정조의 개혁은 순조로 이어졌을 것이고 당리당략에 빠져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시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조는 ‘독살설’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의문 속에 죽었고 이후에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정조가 등용했던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들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함정에 빠져 대부분 귀양을 가거나 죽었습니다. 정조가 밝힌 등불을 완전히 꺼 버리고 나라를 암흑으로 되돌렸습니다. 책의 뒤표지에 이승훈, 정조, 정약전, 정약용의 질문이 나옵니다.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무리에 대해, 부친(사도세자)을 죽인 그 무리와 함께 미래를 지향했던 임금(정조)에 대해,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사람에 대해 묻습니다.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 시대도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리당략에 의해 자기 이익을 쫓는 자들이 더 높은 지위에 오릅니다. 정약용과 형제들은 국회 의원이나 장관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를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정치가 눈에 비칩니다. 어쩜 그리 비슷할 수 있는지….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계속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자기 배만 위하는 세력을 계속 길러 냈기 때문은 아닌지….

책을 읽고 나서 ‘책만 읽는 바보’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는 왜 그들을 책만 읽는 바보로 만들었을까요? 허목 선생을 제가 사는 궁벽한 시골 삼척으로 보내고, 정약용을 강진으로, 정약전을 흑산도로 보냈을까요? 재상이 되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마땅한 이가환, 권철신을 왜 죽였을까요?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우리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마음도 함께 일어납니다. 눈물 나도록 안타까운 역사의 흐름 앞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답함이 몰려옵니다.

성경을 읽어도 같은 마음입니다. 선지자를 죽이고 파송된 하나님의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이 없던 시대가 없습니다. 왕이 없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한 사람들이 성경 곳곳에 가득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질문은 많은데 대답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답답합니다.

 

책 내용보다 느낌을 적을 수밖에 없는 까닭

독일과 일본은 둘 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나라입니다. 그런데 독일은 의심을 벗고 동반자로 대접받지만 일본은 아직도 의심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일본을 받아들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불안감’과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부모 세대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이지만 자식 세대가 지고 가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한때의 잘못된 생각이 편견과 아집이었으며 씻을 수 없는 죄악된 결과를 남겼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를 인정하면 현재 누리는 기득권을 잃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여전히 고개 빳빳이 세우고 힘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 이름이 신사 명부에 올라 있어 삭제를 요청해도 무시합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들의 눈물을 외면하다가, 그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는 ‘모함이나 말도 안 되는 탄원’이라고 쓰겠지요.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를 내세우고 기회를 잡아 좀 더 나은 자리로 옮기는 걸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잘난 척하는 걸 싫어하지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겸손해서, 올바른 방법과 절차를 지키려다 낮은 자리에 처하면 우둔하다고 합니다. 정도껏 하라고 말하지요. 겸손은 좋아하지만 그것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겸손해야 겸손이 빛을 발합니다. 낮은 데에 처한 사람이 겸손하면 겸양이 아니라 본래 타고난 굽실거림이라 말합니다. 모순이지요. 일본이 여전히 큰소리 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정조대왕이 죽은 것도, 정약용이 귀양 간 것도, 이가환을 비롯한 좋은 사람들이 먼저 죽은 것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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