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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내가 읽은 책, 책이 읽은 나 40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양철북
『내 생애의 아이들』, 가브리엘 루아, 현대문학


 저는〈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안 봅니다. 악을 쓰며 울고, 화를 참지 못해 물건을 던지고, 지옥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를 보면 스트레스가 팍팍 쌓입니다. 행여나 ‘저런 아이’를 만나면 어떡하나 싶어 아예 채널을 돌립니다.  실제로 ‘저런 아이’를 만나면 한숨이 늘어나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집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저랬던 아이’가 나와 마음이 맞아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후반부처럼 변하기도 합니다. 그럼 마치 모든 ‘저런 아이’가 내 사랑과 능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또 다른 ‘저런 아이’를 만나 아이를 변화시키지 못해도 내 잘못이 아니라 아이 잘못으로 떠넘기게 됩니다. 예전에 변화시킨 아이가 있으니 변하지 않은 이 아이는 내 탓이 아닙니다.

 교사의 무능을 드러내기 싫어 ‘아이 탓, 부모님 탓’을 하지만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새록새록 깨닫게 해 주는 일이 날마다 생깁니다. EBS 프로그램〈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나가서 체질을 뜯어 고치고 싶습니다. 출연한 선생님은 처음에는 자기 잘못조차 인식하지 못하다가 멘토들 말을 듣고 웁니다. 자기가 너무 나쁜 교사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결심하고 스스로 고치고 고쳐 방송 뒷부분에서는 박수를 받는 훌륭한 교사가 됩니다.

 처음에는 참 괜찮은 내용이다 싶었지만 뒷맛이 좀 씁쓸합니다. 방송에 스스로 출연 신청해서 수업을 공개할 정도면 용기 있고 꽤 괜찮은 교사입니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이분들 모습은 영 형편없습니다. 그럼 신청할 용기도 내지 못한 보통 선생님들 수준은 어떨까요? 저도 그렇고 많은 선생님들 역시 출연한 분들보다 낫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다면 더 심한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이 책을 보고도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고 아이들과 함께한 이야기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2011년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저런 아이’가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천사인데 내가 교사답지 못한 마음을 갖고 있구나 되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극적이라 한쪽 마음은 감동으로 울렁거리지만 다른 쪽에서는 씁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초임 교사 고다니 선생은, 친구를 깨물어 병원으로 실려 가게 만들며 선생님에게도 덤벼드는 데쓰조의 담임이 됩니다. 데쓰조를 비롯한 ‘저런 아이들’은 쓰레기 처리장 안에서 삽니다. 지저분하고 공부는 당연히 못하며 말도 제대로 안 하거나 안 듣습니다. 고다니 선생은〈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나온 분들이 좋게 변한 것처럼 교사가 된 첫해에 쓰레기장 아이들을 위해 리어카를 끌며 폐지와 병을 모으는 일까지 합니다. 함께 등장하는 아다치 선생님은 원래부터 애들을 좋아해서 ‘쓰레기장 이전’ 문제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단식 투쟁까지 합니다.

 제가 교사이기 때문에 책에 나온 내용 하나하나가 신경 쓰입니다. 고다니 선생, 아다치 선생처럼 정말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감동이 벅차오르면서도 짜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은 전혀 이렇지 않거든요. 일본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책이지만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선생님처럼 할 용기가 제겐 없다고 고백하려니 부끄러워 변명하는 겁니다. 문학을 너무 현실성으로만 판단하는 걸까요?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감동적인 선생님의 사랑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잘해 줘도 변하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제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나 자신도, 아이도 정말 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우리 아이가 변했어요’, ‘우리 선생님이 변했어요’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설득하고 시청 정책도 바꿉니다. 부럽습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

 이 책에도 ‘저런 아이’ 만큼은 아니지만 선생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처음 온 학교가 부담스러워 아빠에게 매달려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이, 성탄절에 선생님께 드릴 선물이 없어 선생님을 피하는 아이, 맡은 선생님들마다 혀를 내두르는 집안의 아이도 등장합니다. 고다니 선생님보다 더 어린 18살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맞아 이해하고 사랑하며 가르칩니다. 친구를 깨물어 병원에 보내거나 쓰레기 더미에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극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하고 평온합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의 마음이 더없이 잘 드러납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가 사건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이 책은 아이들 마음을 선생님이 어떻게 이해해 가는지, 선생님이 자기들을 이해함에 따라 아이들 마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묘사합니다. 뛰쳐나가는 아이도 없고 대단한 갈등도 별로 없지만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글의 배경은 60~70년 전 캐나다 퀘벡 대평원에 있는 학교입니다. 선생님은 시골길을 걷거나 말을 타고 가정 방문을 합니다. 아픈 엄마 대신 엄마 노릇을 하는 아이, 학교보다 말을 달리며 자연을 느끼는 아이 집을 방문합니다.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그날 돌아오지 못하고 아이 집에서 자기도 하고 눈길에 길을 잃어 고생하기도 합니다. 이것 외에는 선생님의 대단한 희생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선생님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특히 드미트리오프가 기억납니다. 거친 아버지 밑에서 글씨도 읽지 못하는 드미트리오프 형제들은 학교에서 말썽꾸러기입니다. 드미트리오프를 맡은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썽꾸러기라고 외칩니다. 막내 드미트리오프를 맡은 선생님은 우연히 글씨 쓰는 재주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학부모의 날에 드미트리오프가 칠판 가득 글씨 쓰는 모습을 보여 주며 아버지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커다란 사건은 없지만 책에 빠져듭니다. 사람 마음을 어찌 이렇게 잘 표현하는지요. 아이가 보여 주는 작은 어깨 들썩거림도 놓치지 않고, 고함 소리조차 화내는 게 아니라 외로움의 표현이라는 걸 밝힙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도 정말 좋은 책이지만 이 책 때문에 짜낸 티가 나는 책이 된 것 같습니다. 조용하고 은근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제 성향 탓이기도 합니다.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두 책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모두 젊은 여성입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수업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숙하지만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순수한 장점이 돋보입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 선생님은 나이에 비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노련합니다. 작은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고 행동 이면에 있는 아이 마음을 알아냅니다.

 주인공을 신규 여교사로 정한 이유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순수함에 때가 묻습니다. 같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두 작가 모두 교사로 오래 지냈으니 이런 마음을 잘 알 겁니다. 저도 종종 ‘오늘은 학교 가지 않고 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을 보며 ‘내 생애의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고 웬수들!’ 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출연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좋은 교사가 되려고 발버둥치지만 쉽지 않습니다.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며 각오를 다져도 힘듭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읽으며 정말 이런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만 욕심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수면 아래에서 떠오릅니다. 동시에 ‘난 이런 선생님이 될 수 없어’ 하며 가라앉고 싶지도 않습니다. 두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내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뇌리에 박힌 아이들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다니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이 변하는 걸 보았고, 그래서 헤어질 때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던 아이들이 기억납니다. 비록 소설 주인공 같은 교사로 살진 못했지만 교사란 자리가 ‘마음에 남겨 둔 아이들’을 안겨 주는 행복한 위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3월의 기대도 잠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퇴색되는 순수한 마음을 다시 찾고 싶으시다면 두 책을 읽어 보세요.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소박함을 원하신다면 《내 생애의 아이들》을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