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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행복한 수업을 어떻게 만들지?

행복한 수업을 어떻게 만들지?

『위대한 수업』, 레이프 에스퀴스, 추수밭

『내가, 사랑하는 수업』, 김태현, 좋은 씨앗

 초임 교사일 때 저는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담임으로 만날 천 명의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선교사, 영화에 등장하는 훌륭한 선생님의 모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열정으로 아이들과 온갖 추억을 남겼습니다. 학교에서 토끼와 닭을 길러 병아리를 부화시켰습니다. 자전거 하이킹을 가고 태백산, 두타산, 쉰움산, 고성산을 넘었습니다. 체육 책에 수영이 나온다고 바다에서 아이들에게 수영 강습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자기도 하고 수업도 재미나게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청량리에 도착하는 밤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열정이 대단했죠.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고 날씨가 더울수록 사람들은 그늘로 피합니다. 제가 열정을 낼수록 그림자에 숨는 아이들도 생겼습니다. 속 좁은 저는, 저를 이해하지 않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누가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합리성, 내 마음에 있는 열정의 정당성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육은 그보다 복잡한 일이지요.

제가 그리 훌륭한 교사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 앞으로 만날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까 고민했습니다. 열정이 큰 만큼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끌고 가려고만 했던 제 모습을 꾸짖으며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열정을 내세우기 전에 아이들을 잘 분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뒤로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보이면 ‘각자에게 맞는 특정한 이유’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됐죠. 하지만 다음에 무얼 해 줄지는 몰랐습니다. 마음을 달래 주고 ‘네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아. 노력해 보자’ 정도로는 아이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1학기에는 괜찮은 아이들인데 2학기가 되면서 점점 더 떠들고 장난기 넘치고 세상에 불만이 많은 아이들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이해한다면 높은 목표를 향하도록 이끌어야 하고 더 높은 가치 기준을 제시해야 하지만 그걸 못했습니다. 열정과 이해심을 높은 가치로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수업을 잘한다고 해도 교사의 능력으로만 그칠 수 있습니다. 교사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아이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죠.

위대한 수업을 만나다

레이프 에스퀴스는 영어를 제2의 언어로 쓰는 극빈층 학생들을 최상위 성적으로 졸업시킵니다. 미국 교사로는 유일하게 국가 예술 훈장을 받았고 대영 제국 훈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LA와 런던의 유명한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연극 공연을 해마다 합니다. 그러려면 작품을 이해해야 하고 음악, 배경, 무대 등을 해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 모두를 최상으로 합니다. 아이들은 뛰어남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귀하게 여겨 바르게 행동하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뒷받침해 주는 부모조차 없는 아이들인데도 불구하고.

에스퀴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주는 가르침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습니다. 국어 시간에 아이들은 작가가 되고,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는 사회 수업을 합니다. 과학 시간에는 과학자가 되고 음악 시간에는 극장을 빌려 연주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 배우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자장면 먹던 아이가 탕수육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특급 호텔에서 일류 요리를 맛보게 만듭니다. 부럽습니다. 다만, 배경 설명이 부족해서 책에 나온 좋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업 아이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겠지요.

저는 에스퀴스 선생님과 반대입니다. 제 능력을 바탕으로 일합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를 전하고 제가 아는 지식을 소개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온갖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줍니다. ‘너희들이 나를 잘 따라오기만 하면 어느 해보다 더 풍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에스퀴스 선생님은 교사의 능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능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잘난 교사가 머리가 되어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잘 이끌어 내서 그들 스스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잘 데리고 다니는 교사이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달려가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다른 카드를 갖고 있다

에스퀴스 선생님의 위대함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저로서는 불가능입니다. 하지만 제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무엇 하나 에스퀴스 선생님보다 나을 게 없지만 저는 예수님을 전합니다. 수업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행복 수업 삼척 모임에서 《내가, 사랑하는 수업》을 나누었습니다. 기독교적 수업 재구성이 처음인 선생님들이라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1부, 기독교적인 수업의 터 잡기’를 읽으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기독교적 수업 재구성을 한다고 무턱대고 창조-타락-구속을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 구조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학문적 체계만 배우는 현실에 대한 비판, 기독교적 수업이 무엇인가에 여러 초점이 있다는 것, 교수자 중심의 수업 양태…. 모두 제가 고민하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수업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동기 유발이 되어 있지 않은 선생님들은 허공에 뜬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수업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에선 너무나 먼 이야기였으니까요.

'2부, 수업의 공간 만들기'를 읽으며 ‘우리 모임 선생님들이 주로 초등인데 고등학교 이야기라서 멀게 느끼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이 부분이 좋았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감성, 지성, 영성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간단한 수업 이야기, 작은 예화, 어쩌면 유치해 보이는 수업 아이디어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가 겪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부딪치는 사람들이 쓴 글이 다 그렇습니다.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읽으면 친근감이 들면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모임에 온 선생님들은 오히려 1장보다 좋았다고 말합니다.

'3부, 기독 교사의 영성’ 이 부분이 있어 좋았습니다. 수업은 색다른 아이들이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 알맞은 색깔을 내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색깔을 내는 배합을 정확한 비율로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체로서의 아이들을 인격체인 선생님이 만나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수업은 교사 자신의 개성에 맞게 색깔을 갖추어야 합니다. 정답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김태현 선생님이 교사 생활 5년 만에 이런 책을 낼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5년, 10년, 15년, 20년…’은 점점 교사를 틀에 가둡니다. 변화는 너무 어렵습니다. 조용하고 소심한 선생님이 책을 읽고 갑자기 야바위꾼이 될 수는 없겠지요. 연수를 받아도 한두 가지 기술을 적용해 보는 정도인데 어떻게 이런 수업을 할까요? 제 생각으론, 김태현 선생님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간사 사역을 하면서 영혼을 향한 열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을 깊이 날마다 묵상하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하나님 은혜가 임하는 통로잖습니까 !

  마지막 카드를 보일 때다

올해, 김태현 선생님이 좋은 교사들의 행복한 수업을 위해 상근을 합니다. 저는 김태현 선생님이 - 비록 국가에서 훈장을 주지는 않겠지만 - 에스퀴스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현실에 갇혀 있는 선생님들, 5년․10년․20년․30년 되면서 굳어 가는 선생님들이 가진 독특한 은사를 잘 발휘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김태현 선생님이 없어도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몇 번이나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이셨을 겁니다. 저는 여러 번 그 속삭임을 놓쳤습니다. 수없이 외친 소리 중에 한두 번 정신 차리고 하나님 음성을 들어 그나마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에스퀴스 선생님도 열정만으로 좋은 교사가 되었다면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더욱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올해, 저도 학교를 옮깁니다. 삼척에 너무 오래 있었다고 동해로 가랍니다. 옆 동네지만 새로운 환경, 새로운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도 다르겠지요. 괜찮습니다. 저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비록, 《위대한 수업》 표지에 적힌 것처럼 평범한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수업》 표지에 적인 것처럼 공교육 현장에서 기독교적 가르침을 말할 거니까요.

2011년 3월호 권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