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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신과 인간의 탐구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내가 읽은 책, 책이 읽은 나 37

신과 인간의 탐구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타나토노트 1,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천사들의 제국 1,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신 1-6』,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권 일 한

 


 



  영혼의 세상, 천사들의 세상, 신들의 세상을 탐험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처음 읽습니다.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 ‘이 사람, 정말 독특하고 대단하다’. 짧은 이야기에 1, 2, 3 하는 식으로 번호를 붙이며 전체 이야기를 진행하는 독특한 편집 방법을 구사합니다. 설명과 묘사,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나오거나 과거-현재, 두 사람 이야기가 번갈아 나옵니다. 신화, 실험, 의학적인 정보, 갖가지 일화를 연결 지어 글에 녹여냅니다.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베르베르의 책 중에 서로 연결되는 세 종류의 책을 소개합니다.



《타나토노트 1, 2》 ★★★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영계 탐사를 주도하는 라울 라조르박과 함께 사후 세상으로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라울은 약물을 주입하여 사람을 잠시 코마 상태에 빠뜨린 뒤 임사 체험을 하게 합니다. 임사 체험을 하는 동안 영계를 탐사한다는 설정입니다. 코마 상태에 빠진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영혼의 장벽을 넘어서고 마지막에는 천사들의 세계까지 가게 됩니다. 물론, 도중에 돌아오지 못해 죽는 사람도 생깁니다. 천사들의 세계를 맛보게 되자 사람들이 돈을 내고 영계 탐사를 떠나게 되고 알지 말아야 할 비밀까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행복을 주는 건 아니어서 논란이 일어납니다. 신비를 밝히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천사들의 제국》 ★★★


최초로 저승을 탐사했던 미카엘 팽송은 사고로 죽게 되고 영계에 올라가 심판을 받습니다. 천사가 된 미카엘은 세 사람을 돌봐야 합니다. 세 사람의 수호천사가 되는 겁니다. 세 사람을 잘 도와서 태어날 때보다 환생 점수를 더 높이 올려야 합니다. 점수가 600을 넘어서게 만들면 그 사람은 천사가 되고 미카엘은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미카엘은 천사들의 세계에서도 더 높은 차원을 찾아 헤맵니다. 미카엘은 도전하는 인생입니다. 인간일 때는 사후 세계를 찾아 헤맸고 천사가 되자 신의 세계를 찾아 나섭니다.

천사들은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천사의 제한성이죠. 베르베르가 묘사한 사후 세계 역시 인간 세계처럼 따분함, 실수가 있습니다. 돌봐야 할 인간을 내팽개치는 천사도 있습니다. 불교, 힌두교 식의 윤회를 바탕으로 선행 점수 600점을 이루면 천사는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미카엘은 이걸 이룹니다.



《신》 ★★★★★

신이 되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올림포스 산에 올라 최종 신을 만나는 자격을 얻기 위해 144명의 후보생들이 그리스 신화의 신들에게 수업을 받습니다. 144명의 후보들은 원시 인류가 생길 당시의 한 부족을 맡아 잘 생존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들이 이루어 가는 역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화와 줄거리가 연결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역사, 과학 관련 실험(침팬지, 쥐, 원숭이, 심지어 벼룩까지),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 놓았습니다. 베르베르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더구나 144명의 후보생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예술가, 정치가인데 이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성격과 행동, 대사를만들었습니다. 그들의 특징과 문체, 성향까지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떨어지는 후보, 의문의 공격으로 죽는 후보가 생기고 미카엘 일행은 더 높은 세계를 계속 탐구합니다. 낮에는 18호 지구의 운명을 쥐고 시합을 하고 밤에는 올림포스 산의 비밀을 찾습니다. 제우스를 만나지만 그도 가장 높은 신이 아닙니다. 제우스 뒤에 있는 그 신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미카엘은 종이에 갇힌 소설 속 등장인물로, 책장을 넘기는 손을 발견하며 책이 끝납니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에서 논평을 낸다면

베르베르가 지어낸 영계 탐사, 천사들의 세계 탐사,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여행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지옥 여행 광고가 나온다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베르베르를 읽고 나서 생긴 감상적인 상상이므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읽어 보세요.)


영지주의에 빠진 환생 옹호론자들의 미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자아에 대한 끝없는 확신을 바탕으로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신에 대한 도전은 결국 파멸로 이어질 뿐이며 이 여행은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은 신비로 남겨 두어야 하건만, 감히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이 가게 될 곳은 심판대 앞이다. 이런 여행을 만든 사람의 엉뚱한 생각은 어린아이들이 한때에 갖는 유치한 상상으로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여행 아이디어를 낸 베르베르는 지옥에서 다윈보다 더 뜨거운 불가마를 차지할 것이다.

- 안식일에 신문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기고한 ○○○ 대표


삶과 죽음은 인류의 끝없는 탐구 대상이다.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와 신화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독단적인 신화가 깨어진 이후에 오늘처럼 대단한 발견은 없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을 반목하게 만든 죽음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 가는 세상에서 신을 다시 정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우리를 신의 자녀요 형제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 힘으로 신의 자녀요 형제의 자리에 앉게 되는 순간이 눈앞에 있다. 자유주의 국제 연합의 대표로서 나는 가장 먼저 영계 탐사선에 오를 것이다. 신의 영역을 무기로 우리를 두려움에 몰아넣은 낡아 빠진 종교 집단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 영계 탐사선 승선권을 선물로 요구한 ○○○ 대표



하나님을 죽이는 방법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신의 영향력이 없이, 인간이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그마한 고통 앞에서도 연약함을 드러내며 니체가 죽었다고 선포한 신을 다시 불러냅니다. 마귀가 작전을 바꾸어야겠지요.


작전 1.  신전을 민원실로 만들기

베르베르는 《신》에서 사람들이 신전을 민원실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존재를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과 코드를 잘 맞춰서 내게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제공받을 수 있다면 신의 정체성은 아무렴 어떻습니까? 절이든 무당이든 기복주의 기독교든. 신전이 민원실이 된다면 아무나 들락거릴 수 있으니 신을 희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입니다.


작전 2. 신의 가치를 줄여 아예 잊게 하기

베르베르는 온갖 신화를 소개합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신화와 신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신화와 신을 접하다 보니 신의 존재 값어치가 줄어듭니다. ‘또 신이야! 저녁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게 더 낫겠네!’ 이렇게 됩니다. 인터넷 서점에 달린 댓글을 보니 이런 유형이 꽤 있습니다. ‘우리 머리로 아무리 고민해 봐야 대안이 없으니 이 땅에서 충실하게 사는 게 좋겠다’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게 만들어진 세상이니 바이오토피아, 테크노토피아에 적응해서 남들처럼 살면 되겠지요.


작전 3. 약간씩 맛을 보여주며 중독시켜라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베르베르에 빠져들 겁니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죽음과 신의 세계를 탐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을 사람의 노력으로 탐구합니다. 베르베르 같은 천재성을 지닌 사람이 내놓은 책이 탐구의 좋은 기회, 재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베르베르 이상을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신비를 체험하며 빠져들지만 끝은 없습니다.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인생은 돌고 도는 거야! 죽고 난 다음에야 안다’는 정도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주일마다 교회에 가며, 말씀에 빠져 살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합니다. ‘과연?’이라는 의심을 하는 나 자신을, 북쪽을 향해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나침반이라고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신을 이렇게 용서하는 것이지요. 베르베르는 죽음 이후와 천사들, 신의 세상을 천재적인 솜씨로 상상해 냈지만 저는 책을 읽을수록 고민입니다. 인간이 끝없이 추구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한계성을 과연 신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신은 믿음의 영역에 그대로 남습니다.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만이 진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