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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마 17:1~4

 

여기에 초막을 짓겠습니다

어쩌면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이 순간이 살아오면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따르는 예수님이 바로 그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체험의 순간이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지위에 대한 확신이 굳어지는 순간이었을 것이고, 그의 영적 생활에서 가장 환희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상황에서 베드로는 그동안의 고된 여정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베드로는 말합니다. “여기에 초막을 짓겠습니다.”

집을 짓고 싶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안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시 내려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지금 눈에 펼쳐지는 이 상황을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전설적인, 모세나 엘리야가 자신들을 알아보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 말들은 그들의 일생에 커다란 자랑이 되었을 것이고, 앞으로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고, 세력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 되었을 겁니다. 그들이 기득권을 확보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학년 말 눈치작전

학년 말이 되면 학교에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다음 해에 몇 학년을 맡을지 서로서로 물어보면서 정보를 파악하고 자신은 몇 학년을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풍경입니다. 어느 학년에 누가 가는가, 어느 학년에 선생님들이 몰리는가를 파악해서 자신이 지원할 학년을 물색하며 눈치작전을 펼칩니다. 기피하는 학년이 있고, 기피하는 아이들이 있고, 기피하는 선생님이 있으니까요.

그 광경들 속에서 가끔 마음이 언짢아질 때가 있습니다. 경력이 짧은 선생님들이 이런 것들을 따지면서 고민하는 모습들을 볼 때입니다. 그들 속에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나, 교육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년에 나 자신이 편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편하고 싶은 마음, 누리고 싶은 마음, 여유를 갖고 즐기고 싶은 마음.

교직이 힘든 이유는 영혼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영혼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년뿐, 이 1년은 어쩌면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지만, 그 이상을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아이들. 그리고 다시 1년. 어쩌면 진정한 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 즈음에 와서야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 반복되는 상황이 힘들기에 자신들만의 초막을 짓는 것 같습니다. 그 초막 속에 머물면서 안전히, 편하게 거하고 싶은 마음에 굴복하게 되고, 계속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들….

 

우리가 초막 짓는 법을 알려 준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것이 후배들에게 비쳐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후배 교사들에게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보여 줬기에 후배들도 우리와 똑같이 행동하게 되고, 신규 때의 열정으로 힘든 짐을 지면서 배워 가는 자세를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편하고 보자는 생각을 심어 준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신규 발령 후 저는 계속 6학년을 지원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해에 6학년을 지원하는 사람이 저 혼자일 때가 많았습니다. 6학년을 맡으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피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가르쳐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중학교만 가면 무너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만 나왔던 시간들이 더 많았었습니다.

그래도 6학년을 맡아 왔던 이유는 제 학창 시절에서 그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기였기에 이제 초등학교를 마무리하는 아이들에게 추억이라고 불릴 만한 기억 하나 마련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나그네로 살겠습니다

올해 저는 5학년을 맡고 있습니다. 6학년 부장을 2년 동안 맡았기에 교장 선생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내려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내년에 좀 더 편한 학년을 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즘 슬며시 6학년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3년째고 내년엔 4년째가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저의 초막을 지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단지 학년 배정뿐만이 아니라 업무나 여러 가지 상황에서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예전에 한 선배님이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교사들의 일생은 발령장 일생이라고. 발령장을 따라서 우리의 근무지가 바뀌며 나그네처럼 살아간다는 의미인 이 말씀이 항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나그네가 되어야겠습니다. 편하게, 우리가 우리의 기득권을 누리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이 피하는 학년과 아이들,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일들을 우리가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있을 학교를, 우리가 맡을 학년을, 우리가 맡을 아이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졌을 때 주실 하나님의 은혜는, 분명 특별한 것이었습니다.